미디어센터인사이트

공유성북원탁회의, 지역문화의 새로운 실험

글_권경우 /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지난 525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United Cities and Local Governments) 유럽회의에서는 '3회 국제문화상'(International Award UCLG-Mexico City-Culture 21) 공동수상자로 프랑스 리옹과 함께 서울시 성북구를 선정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세계지방정부연합'은 세계 180여개국 1,000여개의 지방도시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명 '지방정부의 UN'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지방정부연합은 국가 중심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지방자치와 분권, 지방재정, 성평등, 문화, 사회통합, 인권문제를 주 의제로 다루며 지방정부들이 정보와 정책을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활동하는 국제기구다. 올해 국제문화상에는 모두 99개 후보도시가 경쟁을 거쳐 성북구가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번 수상은 성북구·성북문화재단·공유성북원탁회의가 공동으로 민관 참여 거버넌스(공유성북원탁회의)를 조직하여 문화민주주의와 문화 협치를 실행해 온 사례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문화정책의 완벽한 사례라는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와 가치가 큰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과 남미 등 전세계 도시의 고민을 성북구라는 작은 도시에서 혁신적으로 실험하고 있다는 점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민과 실험이 단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동시대 도시를 계획하고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의제일 수 있음을 검증받은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공유성북원탁회의를 중심으로 성북의 문화협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공유성북원탁회의'(이하 '공탁')20129월 성북문화재단의 설립과 함께 지역문화예술생태계를 고민하면서 여러 사람의 공동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성북구라는 지방자치단체와 성북문화재단이라는 중간지원조직, 그리고 민간 문화예술인들의 조합이 잘 들어맞은 셈이다. 첫 모임은 20141월이었지만, 14개 단체 27명의 구성원들이 전체모임을 시작한 것은 2014225일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월 1회 전체모임을 진행해서 모두 40회 이상의 모임을 가졌고, 1년에 1회 체육대회와 엠티(MT)를 진행한다.

 

공유성북원탁회의의 특징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무엇보다도 개방성을 유지하는 것과 운영방식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공유성북원탁회의에는 누구나 초대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다. 2015년 자체 운영 내규를 마련하면서 '자율적 활동(자발성)', '문화민주주의(민주성)', '우정과 협력(연대성)', '문화다양성을 통한 차이의 존중(다양성)'이라는 네 가지 원리를 토대로 운영된다. 기본적으로 운영위원회와 공동운영위원장 선출 등은 자발성과 자율성을 토대로 한다. 전체 구성원 가운데 자발적으로 운영위원을 구성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보면 20-30명 정도가 참여한다. 특별한 혜택이나 댓가를 받는 것이 아니며 자발성과 그에 따른 일정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 운영위원 중에서 투표를 통해 1인의 공동운영위원장을 선출하고, 나머지 1인은 추천과 자천을 통해 '사다리타기'라는 전무후무한 선출방식을 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매년 2명씩 8명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배출하고 있지만 한 번도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마치 장난처럼 보이는 '사다리타기'는 오히려 '신탁'이라고 의미부여를 함으로써 투표를 통한 운영위원장보다도 축하를 받는다. 이러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선출과 운영방식은 공유성북원탁회의 내부의 일종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직접민주주의의 모델을 실험하는 것과 같다. 매월 진행하는 전체모임에서는 새로운 구성원과 함께 모두가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매월 그러한 시간을 견디고 함께 즐기는 이들이야말로 핵심 그룹으로 남는 것이다. 전체 모임의 자리는 자신들의 활동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다양한 입장에 따라 토론하고, 각각의 활동에 대한 격려와 축하가 공존하는 자리이다. 이러한 경험은 지역사회에서 짧은 역사를 가지는 네트워크에서 하기 힘든 의식에 가깝다. 지금까지 지역문화는 다양한 이름의 협회가 주류를 이루지만 실제 지역문화의 구체적인 활동이나 사람들의 삶과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하지만 탈장르와 융합, 문화예술생태계 등의 가치를 내세우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등장함으로써 약간의 충격과 더불어 지역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네트워크의 강점은 문화예술 영역의 다양한 장르를 포괄할 뿐만 아니라 문화기획자와 마을활동가, 주민예술가 등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공통의 경험을 축적하고, 지역사회의 공통 현안과 의제를 다루고, 이를 통해 공통의 가치를 발견하고 찾아간다. 이때 가장 큰 장점은 개별적 활동을 넘어 공유와 협력을 통한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계와 구조를 통해 마을활동과 지역축제, 예술마을만들기, 동네문화예술교육,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유성북원탁회의는 성북문화재단과 협치 파트너가 되어 정책 수립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기획사가 주관하는 지역축제가 아니라 문화기획자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축제민간사무국을 구성하는 등 축제거버넌스를 실행하고 있으며, 예술마을만들기나 협동조합 조직을 통한 공간공동운영 등의 사례들도 만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북에서 가장 큰 축제인 성북세계음식축제 누리마실을 협치형 축제모델로 전환하면서 축제를 주관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공공극장의 새로운 운영을 실험하고 있는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은 연극인협동조합을 통해 공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방치되어 있던 미아리고개 고가 하부공간을 미인도(미아리고개+사람+)’라는 이름의 문화복합공간을 만들어서 전시와 공연, 마켓 등 다양한 문화활동의 산실이 되고 있다. 성북구에서 가장 큰 도서관 지하에 있던 낡은 다목적홀을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천장산 우화극장이라는 블랙박스형 극장으로 예술인들과 함께 만들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성북동 중앙차로의 플라타너스 나무가 잘려나갔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서 싸워 나무를 지켜낸 일이나, 지역의 사학 재단 비리에 맞서 싸우다가 해고된 교사들과 함께 시위에 동참하는 일, 그리고 세월호 주기에 맞춰 지역차원에서 추모 행사를 진행하는 등 문화예술을 넘어 지역사회의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주도하기도 한다.

 


그 결과, 공유성북원탁회의는 2017'성북 명예의 전당' 문화예술분야에 선정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관례로 보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정 개인이나 직능단체가 아니라 지역문화활동을 꾸준하게 해 온 젊은 문화예술인네트워크에 시상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북 명예의 전당은 지역사회발전, 선행봉사, 미풍양속, 문화체육, 모범청소년 등 매년 지역을 빛낸 인물과 사업을 선정해서 성북구청 건물 내부에 별도 공간을 조성해서 기념하고 있다. 성북구청이라는 공공 차원에서 민간의 활동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타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례에 해당된다.

 

'공유성북원탁회의'는 대단한 조직 같지만 단단한 조직이 아니라 유연한 플랫폼이자 숙주에 가깝다. 운영위원회가 있지만 연결과 공유, 연대와 확장을 지향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장 작은 단위라고 할 수 있는 동네로 진입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구체적인 삶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골목과 시장에서 이 네트워크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지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그것은 숫자나 성과로 나타나는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 느낄 수 있는 행복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공동체는 사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서 묻어나는 표정이다.

 

 

지역은 구체성과 다양성이 잘 담겨 있는 공간이다. 추상적인 가치가 구체적인 현장과 구체적인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정책 사례'라고 부른다. 문제는 대부분의 정책 사례들이 페이퍼나 자료로 남지만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왜 지역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좀 더 지속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지역문화를 하나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시적인 성공이나 특정 사례는 될지언정 지속적인 사례로 살아남지 못한다. 지역은 정치와 문화, 경제, 교육, 사회 등의 문제가 동시에 드러나는 최종 지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문화를 볼 때 통합적이고 온전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활동()과 생활의 분리가 아니라 이라는 온전한 과정을 전제로 고민할 때 가능한 일이다.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공동체주의처럼 어떤 이론이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공유성북원탁회의는 문화협치와 마을자치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으로 살아가는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