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완두콩을 소개합니다

글_안충환 / 미디어공동체 완두콩 협동조합 콘텐츠기획실장


완두콩은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시골매거진 완두콩을 발행하며 사람과 마을을 기록하고 있는 미디어공동체다. 최근 지역에서 같이 활동 중인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과 함께 완주공동체미디어센터의 운영을 맡아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 완두콩

 

20116월 우리는 실업자가 됐다. 다니던 지역신문사는 사원주주, 독립경영이란 미명아래 서로의 열정을 쥐어짰다. 가고자하는 방향에서 의견을 달리했던 동료들은 갈라섰다. 혹자는 남고 혹자는 떠나고. 우리는 그 떠난 무리의 한 가닥쯤 되었다. 어느 날 퇴사 후 마을사무장으로 변신해 어르신들 수발을 들고 있던 선배가 우리를 불렀다. “놀면 뭐하냐. 커뮤니티비즈니스(CB) 매니저과정이나 같이 듣자.”

공동체기업 쯤으로 해석된 커뮤니티비즈니스는 당시 완주군 마을활력사업에서 가장 핫한 실험모델 중 하나였다. 전국 최초로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가 만들어졌고 우리는 그해 9, 그 프로그램의 1기 수강생이 되었다. 완두콩은 그 한 달짜리 교육과정에서 시작됐다. 교육과정 안에서 우리는 지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했고 우리가 잘할 수 있고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 완두콩이다. 준비과정을 거쳐 2012년 예비 커뮤니티비즈니스에 선정돼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아 10월 월간 완두콩을 창간했다



뭐라고, 완두콩? 안 사

 

시시콜콜한 얘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전 직장에서 본 세상은 거창했지만 부당한 일 투성이었다. 사람과 마을과 꽃과 나무에 마음이 갔다. 수컷인줄 알고 키웠던 개가 어느 날 아침 새끼를 낳아서 깜짝 놀랐다는 주민의 소식을 전했고 마을 입구의 오래된 나무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관심사였다.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건 신나는 경험이다.

창간 초기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하면 어르신들의 반응은 대개 이랬다. “뭐라고, 완두콩? 안 사.” 그럴 만도 했다. 미디어로선 너무 생소했고 작물로서는 너무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심 잘 지었다 뿌듯해하던 이름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라 생각하며 한 달 한 달 만들어온 게 벌써 일흔 번째가 되었다.

완두콩은 완주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쓸모 있게 소문내 지역사회에 온기 주기를 미션으로 정했다. 이웃끼리 서로의 소식을 공유하며 더 가까워지고 지역공동체가 우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란다. 그러면 이곳이 지금보다 더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이 일에 귀농·귀촌인, 마을사무장, 초보엄마, ·현직 언론인, 젊은 단편영화 감독 등 다양한 지역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마을기자로 함께하고 있다. 이천 원부터 만원까지 마음을 모아 완두콩을 응원하는 후원독자들도 있다. 이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미디어공동체, 그리고 협동조합

 

완두콩이 하는 일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돈을 버는 일과 돈을 쓰는 일. 우리는 완두콩을 발행하고 이웃의 이야기를 담아 책을 만들고 청소년들에게 기사 쓰는 법을 가르친다. 완두콩발행과 출판은 돈을 쓰는 일이고 기자교육은 그 중간쯤에 있다. 우리가 가진 수입원은 취재 경험과 편집 지식, 디자인 기술인데 다행히 지역에서 좋게 봐줘서 이 재주를 팔아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이 일로 먹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경영에 무지한 초보들에다 정상적인 활동으로 지역언론이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창간 전 완두콩에 대한 구상을 펼쳐놓으면 다른 선후배들은 안 되는 일이라며 말렸다. 새로운 아이템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나마 실패사례만 무성한 일이었다. 충분히 동의하는 바였기에 밥벌이는 각자 알아서 하고 주말에 모여 완두콩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를 완주로 부른 선배가 대표가 되어 월급 없이 사무실을 지켰다.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났는데도 지금까지 이 방식을 유지하는 구성원도 있다. 다행히 완두콩은 그 사이 꾸준히 자랐다. 처음 몇 년은 상근자 한 명 못 뒀는데 지금은 다섯 사람의 일자리가 되었다. 보조금 없이도 자립경영이 가능해졌고 활동 영역은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사이사이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동그라미재단 같은 후원자가 짠하고 나타나곤 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초기와 비교하면 내부가 단단해진 건 분명하다.




개인의 삶은 마을의 역사요, 지역사

 

가끔 지난 완두콩에서 천방지축 개구쟁이들의 신생아 때 사진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름도 없이 태명으로 불리던 3쩜 몇kg의 이 작은 생명체가 벌써 부모에게 말대꾸할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완두콩이 지역과 함께 나이 들어감을 느끼게 된다. 이 녀석들이 훗날 손주를 무릎에 앉혀놓고 완두콩을 들춰보는 상상을 한다.

지역의 모든 사람을 한 번씩은 꼭 담고 싶다. 내세울 것 없는 삶이지만 그 자체를 묵묵히, 그리고 충실하게 살아온 이웃 아무개 씨가 완주 어딘가에서 살다갔다는 흔적이 완두콩이길 바란다. 완주, 사람들, 버머리사람들, 할미그라피등 완두콩이 펴낸 몇 권의 책은 이러한 바람 위에 서 있다. 시골마을 이발사, 시인을 꿈꾸는 한글학당 할머니들, 멧돼지 사냥꾼, 등 책의 주인공들은 평범한 삶이란 없다는 걸 새삼 우리에게 깨우쳐준 고마운 스승들이다. ‘사는 동안 착하게 살면서 저승 가는 길 닦는 중이라는 만물공구 이상철 어르신(완주, 사람들Ⅱ』)의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 여러 인생이 있었고 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조만간 완주의 많은 마을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할머니 세분이 주민의 전부였던 마을도 있었다. 개인의 기억이 마을사고 지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이 사라질 때 그 만큼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공동체와 미디어 사이

 

지역에서 완두콩의 역할은 기록하고 공유하고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마을과 사람을 기록하고 이웃과 소식을 공유하고 누구나 참여해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 한계에 이른 농촌사회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그 가능성을 완두콩에서 보아 왔지만 최근 하나가 더 추가됐다. 바로 완주공동체미디어센터.

얼마 전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과 함께 이 문화공간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이 시설(공모명칭은 아트마당 문화스튜디오다)의 위·수탁 공모가 떴을 때 주민들은 외부가 아닌 지역 내 활동조직이 수탁자가 되길 원했다. 아무래도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이 지역에 도움 되는 고민을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공모에 나서기 전 씨앗과 완두콩은 미디어센터의 방향에 있어서 공동체와 마을이라는 화두를 공유했다. 공동체와 미디어, 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은 그 사이에 있다.

 

 

 

완두콩이 걸어온 길


20119월 창간 준비모임

20122월 완주군 커뮤니티비즈니스 공동체 선정

10완두콩창간

20138월 협동조합 전환

10월 동그라미재단 로컬챌린지프로젝트 1기 선정

201412월 단행본 완주, 사람들1출판

20155월 농림축산식품부 농촌공동체회사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