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아카데미극장’이라는 여정

글_변해원 /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아카데미극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원주영상미디어센터에서 가끔 발행하는 매거진 모두를 제작하면서이다. 20151월 아카데미극장을 커버스토리로 한 잡지가 나왔을 때만 해도 원주역 근처 문화극장이 같이 있었으니, 그만큼 소중한 존재인지 몰랐다. 그해 겨울 문화극장이 갑자기 팔리며 철거가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문화극장 자리에 만들어졌다. 혁신도시, 기업도시가 들어오며 날로 팽창되어 가던 원주였지만 아쉽다아쉽다라는 말은 쉽게 삼켜지지 않았다. 그렇게 유일하게 남게 된 아카데미극장. 이건 좀 지켜내야 하지 않겠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2016714, 첫 번째 아카데미로의 초대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아카데미극장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누자며 연락이 왔다. ‘원주도시재생연구회’.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곳. 도시재생이라는 말도 풍문으로만 들었지, 원주에 그런걸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몰랐다. 시의원, 건축가, 문화기획자 등 다종한 사람들이 모여서 도시재생이라는 먼 이야기를 당기려고 노력 중이었다.

우리는 사전 행사로 시장상인회, 건축학과 교수, 지역 문화단체장 등이 참여하는 포럼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포럼에서 중요한 발언이 나왔다. 평소 아카데미극장 보전이 웬 말이냐!우리는 주차장이 더 필요하다는 지론을 펴왔던 한규정 상인회 회장이 오셔서, 상인회 안에서 격렬한 토론을 했고 주차장보다는 아카데미극장 보전이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결정했고 지지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다.

그리고 시민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열흘 기간 동안 1200여명이 참여했고, 88%가 극장 보전을 원한다는 답변을 얻었다. 그리고 진행된 아카데미로의 초대행사. 시민들이 보내온 아카데미극장과의 사연 엽서를 걸고, 아카데미극장 바로 맞은 편에 있었던, 시공관의 문짝도 가지고 와 전시했다. 백 여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고, 지역 언론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몇 번의 아카데미로의 초대행사를 거치면서 단체 중심, 인물 중심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전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아카데미극장 보전을 위한 시민 기획위원을 모셨다. 22명의 기획위원이 참여해 2017년 원주역사박물관의 도움을 받아 먼지 쌓인 극장에 불을 켜다라는 기획전시와 책자를 발간할 수 있었다.

영상콘텐츠 제작에도 힘을 들였다. 서울영상미디어센터의 도움을 받아 원주 단관극장들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씨도로 시네마로드>, 단관극장과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단편영화 <꿈의 공장>을 제작했다. 그 과정에서 멀티플렉스 극장 개관에 환호했던 원주의 젊은 친구들이 폐관된 극장으로만 여겼던 아카데미극장을 바라보며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아카데미극장, 천천히 천천히 물어가는 시간


아카데미극장이라는 고민의 시간이 갈수록, 단순히 오래된 극장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지역재생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동진(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은 지역재생을 쇠퇴하거나 쇠퇴 중인 지역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여 살린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것처럼 아카데미극장에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밤이면 사람의 발길이 끊기는 구도심에 지속적인 문화콘텐츠를 제공하여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면 누가 마다할까.

극장은 영화만을 상영하는 곳이 아니었다. 의연금 모금을 위한 악단 공연이 진행되고 초등학교 졸업식, 시민들이 참여하는 가족노래자랑이 열렸다. 아카데미극장은 몇 사람의 아이디어로 쉽게 변화해서는 안되는 곳이다. 원주를 살아온 많은 이들의 기억이 새겨진 공간은 55년의 시간만큼 두터운 것이다. 그 기억들을 헤아릴 충분한 시간이 시민들에게는 필요하다. 원주의 대중문화를 이끌던 극장의 현재적 의미를 따져 어떤 공간으로 변모해야 할지, 쇠퇴해가는 구도심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시민 모두가 천천히 천천히 재생의 의미를 물으며 찾아가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야 아카데미극장이 구도심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시민 모두의 아카데미극장을 상상한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뉴딜사업에 시민 참여는 필수적인 평가요소이다. 2016년부터 진행된 아카데미로의 초대는 문화기획자, 상인회, 건축가 등이 자발적으로 나서 아카데미극장을 보전하고 이를 통해 구도심을 활성화해보자는 시민 프로젝트이다. 마침 원주시도 국토부에 신청한 뉴딜 사업안에 아카데미극장 매입과 리모델링 비용을 책정했다. 아카데미극장을 원주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가치를 담은 공공재로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관 협력 문화거버넌스를 통해 아카데미극장의 미래를 같이 상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아카데미극장을 시민자산화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도시재생기금과 임팩트 투자, 원주 시민들의 기부를 통해, 아카데미극장을 시민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보고자 하고 있다. 일례로 서울 대학로 샘터사 사옥은 그 역사,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이해한 사람들에 의해 미래 세대의 혁신적인 실험 공간으로 쓰여지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남의 일만으로 두고 싶지 않다.

여태 한 이야기의 중심에는 시민이 있다. 시민 필요에 바탕한, 시민 주도의 아카데미극장 재생과정과 변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반짝 찾아가다 천덕꾸러기가 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주인인, 시민이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지속가능할 수 있다. 그래야 원주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진행해 갈 도시재생의 긴 여정이 온전히 원주 시민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게 바란다

 

원주영상미디어센터는 서울영상미디어센터가 진행한 차세대 제작지원사업, 지역별 요구에 응하는 자유공모사업을 통해 아카데미극장 보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는 시민들의 자발적 문화재생 프로젝트의 주요한 밑천이 되었고, 영진위가 행할 수 있는 지역영상문화사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내내 고팠던 것은 영화진흥위원회는 단관극장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 하는 의문이었다. 2000년을 전후로 해서 하나 둘 없어지던 전국의 주요 단관극장들을 바라보던 시네필들은 자신들의 삶의 역사가 철거되어 가는 과정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의 영화 유산으로 어떤 것들을 상정하고 있나. 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하는 영화 복원사업, 현대 영화의 소품을 지속적으로 모아오는 작업, 원로 영화인에 대한 지원 사업 등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한국 영화 역사의 한 가운데 그 현장이었던 단관극장 자체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찾기 힘들었다. 개인 소유의 건물이라 또 사적 사업에 대한 지원이 불가했다는 논리는 그때만 가능했던 이야기다. 이미 힘을 잃은 논리이다. 사회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축유산을 보전하자는 움직임은 이미 오래 되었고,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사업이 생산자 중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보다 많은 영화가 수출되고, 보다 많은 영화가 수상하기를 바라는 입장이 바로 영화진흥의 목적이었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 진흥사업에 수용자인 시민과 시네필의 자리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지역에서 단관극장들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재론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한국영화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단관극장을 찾기 힘들고, 그나마 외형만을 유지한 곳도 문화예술과는 먼 용도로 쓰여지고 있는 곳이 태반이다. 지금이라도, 얼마 남지 않은 전국의 또 다른 아카데미극장을 전수 조사하고 보전·활용 방안을 찾기를 바란다. 그 곳이 박제된 유물로서가 아니라 미래세대와 함께 영화문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과 수용자 중심의 지역영상문화 정책을 기대한다

 

지역 영상문화 거점으로 단관극장 활용을 제안한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 도시재생사업과의 연계를 통하여 단관극장을 영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복합공간, 시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 영화를 매개로 사람들이 모여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역의 이슈를 나누는 공간으로 되살리는 것은 지역 재생이라는 요구에 따른 것뿐만 아니라 극장의 역사성을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기존 생산자 중심의 영화정책에서 수용자 중심, 시민 주도의 지역영상문화사업으로 전환을 꾀해야 한다. 그 주체도 중앙의 영진위가 아니라, 지역 독립영화협회, 영상위, 미디어센터, 사회적 경제조직 등 지역의 사정에 따른 다양한 주체들과 손잡아야 한다. 이를 통해 일률적인 지원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사정에 맞는 제작지원, 교육지원, 영화문화사업 등이 나올 수 있다. 그 과정은 자연스레 지역 중심의 일자리 창출 및 사회적 경제로의 확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