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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로 탄생한 영국의 공동체 상영 플랫폼, BFI Neighbourhood Cinema

글_성상민 / 문화평론가

2000년대 이후 영화판 내부에서 주기적으로 논의되는 상영방법이 있다. 일반적인 극장 개봉 형태를 벗어나,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싶은 이들이 뭉쳐 자신들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맞춰 영화를 보는 방법. 바로 공동체 상영이다. 한국에서는 본디 독립영화나 사회운동적인 성격을 지닌 영화들이 이러한 상영방법을 택했다. 아직 사전 검열이 폐지되기 전, 영상패 장산곶매에서 만든 <파업전야><! 꿈의 나라> 같은 작품은 애시당초 검열을 받을 생각도, 검열에 통과될 여지도 없었다. 상영을 원하는 대학교 총학생회나 노동조합과 함께 경찰의 진압을 온 몸으로 막으며 기습적으로 영화를 틀었다. 이후 1997년 헌법재판소 판결과 함께 사전 검열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독립영화에 녹록지 않은 배급 환경에서 공동체 상영은 한동안 독립영화의 비중 있는 상영방법이 되었다.

 

한국 공동체 상영의 효시라 부를 수 있는 영상패 장산곶매의 작품 <파업전야>의 상영 포스터

 

하지만 이러한 한국의 공동체 상영은 198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순간은 물론, 2010년대 현재에도 철저히 민간의 몫으로 놓여 있다. 공동체 상영을 위해서는 영화의 상영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와 연락을 하고, 상영 장비와 공간을 섭외하는 것은 물론 함께 영화를 볼 사람을 모으기 위해 홍보하는 일까지 필요하다. 그런 일들을 누구도 도와주는 이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한국의 공동체 상영은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 김일란-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 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제작한 <공동의 기억 : 트라우마>처럼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반향을 유도하는 작품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큰 홍보 없이도 자발적인 관심이 쏠리기 좋고,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지역의 사회운동 단체가 기민하게 자신들의 공동체 상영을 조직하기에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전통적인 사회운동이 여러 한계에 부딪히는 가운데, 민간이 중심이 된 한국의 공동체 상영의 미래는 밝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민간의 자발성을 유지하면서도, 꾸준히 힘을 낼 수 있는 공동체 상영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1925년부터 시작된 영국 공동체 상영의 전통, 1980년대 위기를 맞이하다

 

영국 BFI(British Film Institue, 영국영화협회)2014년부터 기금을 모아 진행하고 있는 BFI Neighbourhood Cinema는 한국의 공동체 상영은 물론 향후 영화 정책을 계획하는 차원에서 있어서도 귀감이 될 만한 중요한 사례이다. 영국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된 공동체 상영 운동의 시작은 1925년부터다. 1차 세계 대전 중 러시아 제정이 혁명으로 무너지고 공산주의 국가 소비에트연방’(소련)이 세워지자,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 소식이 화들짝 놀라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작품들의 상영을 적극적으로 검열하기 시작했다. 영국 역시 이러한 광풍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에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소설가 H. G. 웰즈를 비롯한 일군의 지식인들이 모여 정부로부터 상영을 금지당한 영화의 필름들을 모아 자주적으로 상영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지식인들은 자신들을 영화 모임이라는 의미로 ‘The Film Society’라 칭했다.

 


 영국의 첫 공동체 상영 모임이었던 ‘The Film Society’기 창립 첫 해인 1925년 제작한 리플렛의 모습.


비록 모임은 1939년 해체되었지만, 이렇게 탄생한 영국 공동체 상영의 흐름은 이후로도 꾸준히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며 이어졌다. 1960년대에 이르러는 약 500여 곳에 달하는 공동체 상영 그룹이 결성되었다. 영국의 공동체 상영 그룹은 좀 더 효율적인 영화 상영을 기획하는 것은 물론, 재정적인 문제를 함께 보조하자는 의미로 1969년 연대 단체 영국필름소사이어티연합’(BFFS, British Federation of Film Society)를 창설하게 되었다. 허나 꾸준히 잘 굴러갈 줄 알았던 BFFS80년대부터 조금씩 위기에 놓였다. 홈 비디오가 보편화된 것은 물론, ‘채널 4’를 비롯한 영화 전문 채널이 영국에서 탄생하며 희귀한 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공동체 상영을 뒤적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공동체 상영 그룹들은 물론 BFFS 자체도 재정적인 위기를 겪었다.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히 유지했지만, 그것만으로 단체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떻게 관객들을 집에서 끌어내 공동체 상영으로 함께할 수 있을까.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하향식 보조금 지원만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거버넌스로 태어난 BFI, 거버넌스로 공동체 상영을 함께하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 것이 BFI였다. 본디 1933년 세워진 민간 비영리 기구였던 BFI는 영국 정부가 공식적인 영화 정책 기관이 없던 시절부터 민관 협력으로 영화 정책 수립과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000년 영국 정부가 영국영화위원회(UKFC, UK Film Council)을 설립한 이후 BFI의 역할은 잠시 축소되었지만, 2011년 이후 UKFC는 재정 효율성 등을 이유로 폐쇄되며 BFI는 다시 민관 거버넌스로 영화 정책을 집행하는 중요한 기관이 되었다. 또한 BFI2012년부터 5개년 계획인 ‘Film Forever’를 이미 기획한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영화 제작-배급 지원에 대한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가장 큰 주안점은 영화 향유였다. 영국의 학교와 협력해 청소년 시절부터 영화를 접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인 필름 클럽’(Film Club), 광역 단위에 존재하는 다양한 영화 단체와 상영관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만들어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영화 관객 네트워크’(FAN, Film Audience Network) 등을 시행했다.

 


영국의 거버넌스 영화 정책 기관인 BFI의 로고 


BFIBFFS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한 것도 영화 향유를 북돋기 위한 차원이었다. BFI는 단순히 BFFS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공동체 상영을 돕기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BFI Neighbourhood Cinema이다. ‘이웃이라는 뜻을 지닌 Neighbourhood라는 말처럼, 좀 더 친근하게 공동체 상영을 접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만든 플랫폼이었다.

 


BFI Neighbourhood Cinema, 공동체 상영의 A부터 Z까지 다루다

 

BFI Neighbourhood Cinema의 사이트에 (https://www.bfi.org.uk/neighbourhoodcinema/) 접속하면 상단에 여러 가지 메뉴가 나온다. 재미있게도 BFI Neighbourhood Cinema는 메뉴 첫 머리부터 공동체 상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는 방법’(Getting started)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해당 메뉴를 클릭하면, 공동체 상영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들이 등장한다. ‘커뮤니티 시네마를 시작하는 7가지 단계’, ‘커뮤니티 시네마 용어집’, ‘커뮤니티 시네마를 운영하려면 얼마나 비용이 들어갈까?’, ‘커뮤니티 시네마를 위한 장비 옵션들’, ‘공동체 상영을 위해 영화를 빌리는 방법같이 실제 공동체 상영을 준비하며 고민하거나 궁금할 수 있는 요소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BFI Neighbourhood Cinema의 첫 화면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는 7가지 단계’(Seven Steps to Starting a Communtiy Cinema)에 들어가면 공동체 상영에 있어 기초적인 공간이 되는 커뮤니티 시네마를 세울 수 있는 단계들을 안내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기반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대개 커뮤니티 시네마라 칭하지만, BFI Neighbourhood Cinema는 영국 각지의 커뮤니티 시네마가 충족해야 할 기본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최대한 관객들이 최소한의 조건 이상에서 공동체 상영을 관람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단계와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굳이 라이센스를 받지 않아도 커뮤니티 시네마를 세울 수 있으나, BFI Neighbourhood Cinema에 등록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상영 공간에서 문제가 생길 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해당 콘텐츠에서는 커뮤니티 시네마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단계들을 제시한다.

 

1단계 : 커뮤니티 시네마 설립을 위한 영감 찾기

2단계 : 커뮤니티 시네마에 필요한 예산을 짜보기

3단계 : 커뮤니티 시네마에 필요한 장비 구축하기

4단계 : 커뮤니티 시네마 라이센스 받기 (상영관 설치 라이센스, 상영 라이센스)

5단계 : 커뮤니티 시네마에서 처음으로 상영할 영화 고르기

6단계 : 공동체 상영 홍보하기

7단계 : 커뮤니티 시네마의 첫 영화 상영하기

 

이뿐만이 아니다. ‘기금 모으기와 지원’(Funding and Support), ‘팁과 아이디어’(Tips and ideas), ‘사례 연구’(Case studies) 같은 메뉴들을 통해서는 공동체 상영을 위해 자금을 모으는 방법, 더욱 효과적으로 관객을 모으기 위한 참신한 방법들, 그리고 성공적으로 공동체 상영을 기획한 영국 각지의 다양한 사례를 모아서 공동체 상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제시한다.

 

BFI Neighbourhood Cinema에 등록된 커뮤니티 시네마의 정보들. 위치, 구비 시설 같은 기본적인 정보부터 상세한 상영 소식까지 함께 설명한다

 

이렇게 공동체 상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마치고 나서야 BFI Neighbourhood CinemaBFI가 인정하고 동륵된 커뮤니티 시네마의 정보를 보여주는 공동체 상영 찾기’(Find a Cinema) 메뉴를 맨 오른쪽에 보여준다. 단순히 공동체 상영 정보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 상영을 고민하고 생각하는 이들까지 모두 모아서 필요한 정보만을 속속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각 커뮤니티 시네마를 소개하는 페이지는 커뮤니티 시네마의 운영자가 직접 작성한다. 각 커뮤니티 시네마마다 제공하는 정보는 제각기 다르나, 기본적으로는 커뮤니티 시네마가 위치한 장소와 연락처, 그리고 구비되어 있는 장비와 시설을 소개한다. 꽤나 적극적인 커뮤니티 시네마의 경우에는 일일이 상영작과 상영 시간을 안내하여 소개 페이지에 올리기도 한다.

 

이렇게 BFI Neighbourhood Cinema에 등록된 커뮤니티 시네마들은 앞서 언급한 BFFS가 운영하는 공동체 상영 중개 플랫폼 ‘Cinema for All’(https://cinemaforall.org.uk/)을 통하여 저가로 공동체 상영을 위한 영화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BFI Neighbourhood Cinema에 등록된 커뮤니티 시네마를 대상으로 고전영화 아카이브 일부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독립-예술영화 배급사와 연계하여 특정 배급사나 감독의 작품을 할인해주는 이벤트도 정기적으로 개최 중이다.

 


 

BFFS가 운영하는 공동체 상영 중개 플랫폼 Cinema for All의 모습. BFI는 물론 다양한 배급사와 협력하여 수많은 작품들을 저가에 이용할 수 있다



BFI Neighbourhood Cinema가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

 

BFI Neighbourhood Cinema는 거버넌스를 통해 공동체 상영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각지에 홍보할 수 있는 거버넌스 플랫폼의 모범적인 사례이다. 동시에 영국만큼은 아니어도, 일본의 커뮤니티 시네마 연대 기구인 일본커뮤니티시네마센터처럼 민관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상영작을 수급하거나 홍보하는 등 이미 해외 각지에서는 거버넌스 기반의 공동체 상영 시스템이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은 영화 정책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은 물론, 공동체 상영 지원에 대한 인식 지반도 얕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2007-2008년 영화진흥위원회가 한국독립영화협회와 함께 넥스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광역-기초 지자체 단위로 공동체 상영 정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체들을 지원하고, 영화 라이브러리를 구축하여 상영작을 저가에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기초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려 시도했지만 이는 정권 교체와 함께 사업 자체가 정리되며 끝나고 말았다. 이후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를 비롯해 지역에 존재하는 영상미디어센터 활동을 지원하고 있지만, ‘넥스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같은 수준의 기획은 여전히 나오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사회적기업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공동체 상영 중개 플랫폼 팝업시네마의 모습

 

그나마 이를 민간의 차원에서 구현하려고 시도 중인 단체가 존재한다. 바로 2013년 설립되어 꾸준하게 활동 중인 사회적기업인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이하 모극장’)이다. 모극장은 공동체 상영 중개 플랫폼 팝업시네마’(http://popupcinema.kr/)을 통하여 공동체 상영을 원하는 이들에게 간편하게 영화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전면에 제시한다. 이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모극장은 정기적으로 영화 배급사나 영화제와 협력하여 작품들을 수급하는 것은 물론, 수급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와 상영회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확보한 콘텐츠를 수급받아 열리는 상영회를 홍보하는 역할도 함께 겸한다. 그러나 모극장의 이러한 활동에는 영화적인 차원의 지원이 투여되지 않는 상황이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의 차원에서 지원을 받고는 있으나, 영화진흥위원회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차원에서는 관련된 정책이나 지원 프로그램이 없기에 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매년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민간에서는 계속 어떻게든 대안적인 상영 환경을 구축하려 하지만, 정부 기관이 이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불일치의 상황은 한국에서도 영국의 BFI Neighbourhood Cinema 사례와 같은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드러낸다. 소위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다이상을 넘어, 정부는 민간의 주체성을 존중하며 지원하는 동시에 공익적인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정착을 도울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만 한다. BFI Neighbourhood Cinema를 단순한 공동체 상영 소개 플랫폼의 의미에 한정지어 보는 대신, 해당 플랫폼이 생겨날 수 있었던 더욱 근본적인 요소를 짚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핵심에는 거버넌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