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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청, 경청이라는 무대로 노인과 예술을 초대하다

글_육끼 / 이야기청 총괄기획자


83세의 노시인은 시집을 냈고, 102세의 노화백은 개인전을 준비한다고 한다. 이제 마흔을 조금 넘긴 나는 동갑내기 친구들과 노안이 왔네, 몸이 예전 같지 않네..” 하며 나이 듦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토로하곤 하는데, 이런 소식들을 접할 때 마다 지금 이 시간들이 모두 쌓여 있을 2058년의 어느 날을 상상해보게 된다. 나이 듦을 둘러 싼, 아직 마주해보지 못한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온다.


노시인은 세상 신기할 것이라곤 없는 나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시 속에 함유된 세월들은 기교 없이 소박하고 따뜻하다. 그는 평범함들로 빼곡하게 쌓인 시간 위에서 세상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음이 분명하다. 화려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인생도 그 자체만으로 분명 경건한 시고, 아름다운 그림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큰 위로가 된다. 노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자리, 그 곳에도 삶이 존재한다고 노시인이 토닥이는 듯하다.

 


나는 서울의 성북구에 살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청년 예술가들이 노인의 삶을 경청하고 새로운 예술 창작으로 이어나가는 이야기청’(이야기 들어주는 청년 예술가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다. 이야기청은 2017년부터 지역과 세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의 자발적 모임이자 우리가 하고 있는 마을 활동, 예술 창작 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야기청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기획자, 연구자 등이 함께하면서 지역 내 노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수집하며,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예술 활동을 진행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다의 의미로 들을 청()’을 쓰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야기 담는 집이라는 공간을 마련하여 노인과 예술가의 지속적인 소통과 예술 창작을 가능케 하는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을 갖고 있어, 이는 공간()’을 담고 있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가 만난 노인들과 청년들의 푸른() 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담겨져 있다.


 



이야기청 활동은 노인들의 일상, 기억, 경험, 관계를 청년 예술가들의 감각을 통해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청년 예술가들과 노인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마주하고 대화한다. 특히 노인들의 평범한 삶의 연속성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한다. 그 평범한 삶의 흔적들이 만나고 쌓이면 마을과 사회의 또 다른 역사성을 드러낸다. 이야기청은 그 삶의 다양한 기억들을 초대하는 작업이고, 초대된 기억들과 현존하는 삶을 마주하게 하는 순간이다. 노인들이 등장시킨 삶의 흔적들은 젊은 예술가들이 초대한 경청이라는 무대 위에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탄생시킨다.

 

예를 들어 이야기청의 작가들은 혼자 사는 노인의 오랜 삶 속에 녹여져 있는 지혜로운 삶의 기술을 발견하고, 이를 1인 가구 청년들과 나눠 보았고(<독거의 기술>), 작가들이 제작한 구르마에 콩물과 식혜를 싣고 의릉을 자주 찾는 노인들과 만나 화분을 잘 키우는 방법, 숙취해소를 빠르게 하는 방법, 연탄구이를 맛있게 먹는 방법 등을 배우고 기록하였다(<수다구르마>). 또 다른 작가들은 모든 물건에 들어있는 개인의 역사를 찾아 할머니의 구술내용을 방의 가구와 소품으로 분류하고 이를 카세트테이프에 담았다(<Interview Tapes-할머니의방>).



'독거의 기술' 결과물



 '수다 구르마' 활동 모습


이야기청의 많은 작업들은 다양한 장르와 형식의 작업들이 협력을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연극과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만나 과거에 이루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 지금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 미래에 언젠가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참여한 노인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하여 노인별로 개인의 이야기로 엮은 책을 발간하고 동시에 사진으로 재현하여 전시를 하기도 하였다(<김노인과 점례씨의 못 다한 이야기>).


노인들의 삶의 장소성(지역성)을 통해 개인과 마을의 역사적 기억, 기록들을 사회적으로 재구성하는 것 또한 이야기청이 주목하는 작업 방식이다. 이야기청 작가들은 상월곡동 문화답사동아리(노인들)과 함께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주변을 돌아보고 지역의 역사를 면밀하게 채집, 그 곳을 둘러싼 건물, 개인의 역사 및 기억을 바탕으로 노인들이 직접 판화를 제작하는 작업을 진행했다(<오직 석관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또한 지역의 공공도서관 한 켠에 편지가 있는 서가와 우체통을 만들고, 노인들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라는 수단으로 직접 기록하여 도서관의 책에 꽂고 이용자가 읽은 그 편지에 답장을 쓰게 함으로써 비현실적 대상과 편지로 소통하는 세계를 도서관에서 구현해보기도 했다(<낭독-새로 쓰는 편지>).



                                                                                         ◆'낭독 - 새로 쓰는 편지' 활동 모습



                                                                                      ◆'오직 석관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활동 모습

 

이야기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업의 과정은 노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평범했던 삶의 자존감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야기청의 어느 작가는 역사의 수집가인 동시에 기억의 엔지니어인 과거 수리기사(건설노동자)를 통해 노인 스스로 자신이 가진 기술과 기억들을 책을 통해 서술하게 했고, 작가 본인이 현재의 엔지니어로서 노인과 마주한 기록을 다시 책으로 만들어보기도 하였다(<엔지니어의 다이어리>) 이처럼 2018년 이야기청의 7개 프로젝트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노인의 삶을 바탕으로 각자의 주제에 따라 창작된 작품이다. 하지만 작품의 내용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이 작업들은 노인들 개인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세대들의 삶을 관통하고 연결하는 사회적 질문들이다.


 

올해 이야기청과 함께한 예술가는 영상, 사진, 공연예술, 사운드아트, 구술연구, 커뮤니티아트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14명의 청년 예술가 및 기획자들이다. 우리는 서울의 성북구를 거점으로 개인 혹은 그룹으로 지난 3월부터 8개월 간 약 100여명의 노인들을 만났다.


우리는 때로는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들을 조심스럽게 탐색했고, 노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좋은 새로운 공간들로 노인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서로의 일상에 침범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때로는 호칭을 탐험하기도 했다. ‘어르신이 좋을지 선생님이 나은지 아님 친근하게 어머니라고 불러도 될지 여러 호칭에 대해 연구하면서 때론 별명을 부르는 과감한(?) 도전도 해보았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면서 노인의 언어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인 심리학자와의 협력 워크숍도 진행했다. 노인들은 예술가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내기도 했고,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 온 청년 예술가들이 이런 일로 먹고 살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서로를 보듬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도대체 이런 걸 어디다 쓰려고 하느냐는 노인들의 퉁명스런 물음은 어느새 나중에도 계속 나이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기록해 달라는 따뜻한 기대로 변해있었다.


이야기청의 활동은 노인의 삶과 역사에 대한 외면이 아닌 경청의 문화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한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들릴 수 있다는 기대이기도 하므로.

 



* 이야기청의 작업들은 이야기청 페이스북 www.facebook.com/memory.talk.house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이야기청 memory.talk.hou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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