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원마을미디어지원센터 개관을 앞두고

    노원마을미디어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가 12월 19일 개관을 한다.지금 이글을 쓰는 시간에도 지원센터의 건축공사 현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알려져 있듯 노원의 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탄생배경에는 마을미디어 활동가들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노원FM, 나우온미디어, 이야기 발전소 등 노원에는 정말 열심히 마을 미디어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다. 이분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더 깊고 넓게 하기 위하여 노원구청에 마을미디어지원센터 설립을 요청하였고, 노원구청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3년에 이르는 준비과정을 거쳐 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마을미디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등을 굳이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신 노원에서 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갔으면 하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자 한다. 아직은 구체성이 약하지만 그래도 이를 토대로 노원센터의 활동 방향이 정해지리라 생각한다. 첫 번째는 “지역의 활동가 및 미디어 단체와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 이다. 앞서 언급했듯 노원 지역에는 열정적 활동가와 단체들이 많다. 지원센터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의 마을 미디어 활동을 원활하게 진행하도록 말 그대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활동이 가까이는 가족과 이웃에게 그리고 점점 더 확장성을 가지고 노원과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희망이자 바람이다. 대다수의 미디어센터의 바람도 이럴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는 항상 어렵다. 하지만 노원의 현재 상황은 다른 지역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노원의 활동단체들이 현재 마을미디어 사회적 협동조합을 구성중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과정을 지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협동조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의 주체들이 지원센터라는 하드웨어 인프라만을 요구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스스로 마을미디어의 주체로 보다 실제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도 깊게 고민해 왔다는 뜻이다. 지원센터로서는 많은 활동을 조합과 함께 찾아볼 수 있으며 시험적인 사업시행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협동조합이 미디어센터와 연계해 실제 사업을 운영하고, 지역 속으로 뿌리를 깊숙이 내릴 수 있다면 지원센터와 주민협동조합의 관계는 파트너가 아닌 운영주체로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주민들과의 관계다. 마을미디어는 활동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을미디어에서 가장 소중히 해야 할 것은 참여하는 주민들이다. 아무리 좋은 자리를 마련해 활동가와 매개자들이 무엇인가라도 하려면 참여하는 주민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참여자들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가끔 잊기도 한다. 크게 보면 노원마을미디어지원센터는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다. 그렇기에 더욱 지원센터는 주민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고 지원해야 하는지 끝없이 고민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실존적 역할을 하는 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되려면 우선 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센터와 주민들간의 소통창구를 어떻게든 형성하고 유지해나가야 할 것이다. 미디어 창작공간, 미디어 놀이터, 생활문화의 공간, 영화상영장 등의 기능은 당연히 수행하겠지만 이러한 주제나 장르와 상관없이 더 넓게 지역의 현안과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논의하고 공감하는 자리를 구조화 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는 방법이나 정책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민 참여와 토론의 문화가 나름 활발한 노원에서는 가능한 구조라 보인다. 세 번째는 운영하는 우리와 관련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좋은 의도와 좋은 자리를 마련해도 지역 활동가나 주민들의 참여와 연대는 힘이 든다. 꾸준한 참여, 지속성을 가진 동호회나 단체로의 성장도 쉽지 않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운영자의 진심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머리와 말로는 주민의 주인의식과 주체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이런저런 핑계로 주민의 참여와 활동을 막을 수 있다. 제대로 중간조직의 역할을 하려면 쉬운 것은 쉽게 소개하고 어려운 길도 함께 가야 한다. 소통을 이야기하면 진짜로 소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가 뭘 하는지는 알고 가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관성적인 움직임은 외부의 마찰이 계속되면 멈추고 만다. 우리는 마찰을 이겨내는 동력을 계속 만들어야한다.    노원지역의 활동가들과 단체, 노원구 주민, 노원구의 공공기관들, 그리고 지원센터의 운영진들. 우리는 주민으로부터 시작해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가능한 여러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움직임이라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조금의 움직임이라도 거대한 움직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지원센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바라는 바이다.

    글_박정식 / 노원마을미디어지원센터장
  • 늘 '함께'인 사람이 되기를

    0. 인사  안녕하세요.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공동체미디어팀 최란입니다. 2016년 10월에 근무를 시작해서 이제 막 2년을 지낸 아직은 새내기 팀원입니다. 공동체라디오와 마을미디어 사업의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해당 분야의 교육을 기획하고, 실제 교육을 진행하거나 운영하는 것부터 후속 활동 지원과 컨설팅, 관련 행사(미니fm, 공개방송, 마을축제 등) 기획과 운영을 주로 하고, 센터의 라디오 장비 관리, 팟캐스트 제작지원, 기타 오디오 콘텐츠 관련 교육을 서포트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1. 영시미와 함께  처음 영시미와 함께했던 것은 라디오제작단 양성교육이었습니다. 교육 수료 후 한 달에 한편 방송을 만드는 시민제작자로 활동하다가 다음 해 진행한 미디어강사양성과정을 수료하고 강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영시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막연한 바람들이 생겼습니다. 전공 분야도 아니고 원래 하던 일과도 전혀 다른 영역이라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바람이 시작이 되어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스태프로서 영시미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입사 직후 11월의 영시미는 아주 바빴습니다. 뭐든 서툴고 어려웠던 그 시기에 제가 느낀 센터의 모습은 마치 책상 하나 당 각자의 사업체가 있는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업무에 대한 것을 상의하거나 질문하기도 조심스럽고, 날마다 조용하고 바쁘게 지나가는 날들이었습니다. 저 또한 이곳저곳 다니며 서툰 업무를 감당하다보니 센터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습니다. 영시미는 어떤 곳인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영시미는 영시미에 대한 스태프들의 애정이 넘치는 공간이었습니다. 바쁜 업무에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과 고민들이 각자에게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쩌면 조금 수다스럽게 서로 이런저런 업무 얘기를 하기도하고 관련성 없는 업무에도 관심을 갖고 얘기를 나누는 그런 공간으로 변하는 중입니다. 전보다 조금씩 더 함께하고 있습니다.  2. 마을미디어와 함께  공동체라디오와 마을미디어의 영역은 그 의미와 가치가 같으면서도 참 많이 다릅니다. 교육내용도, 이후 활동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다른데 그 다름이 무엇인지 느끼고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답을 다 찾지는 못했습니다. 16년도 말 전북지역 마을공동체미디어활성화지원조례가 만들어지고 지역에서 마을미디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갔습니다. 그러나 조례의 실효성 문제가 불거졌고, 지원조직으로서 영시미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한계도 있었습니다. 담당자로서 저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습니다. 평소 정책적인 영역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고, 업무 역시 아직 미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마을미디어 단위와 최선을 다해 함께 하는 것 뿐 이었습니다. 칭찬과 응원을 담아 교육을 진행하고, 회의 자리에 되도록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행사 현장에서는 식구이고 우리인 것처럼 지낸 시간들 속에서 어리고 부족한 저를 믿어주고 고마워해주는 많은 분들을 만나고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전주에는 마을미디어를 지원하는 공식적인 중간지원조직은 부재합니다. 영시미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지역에서 마을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관련 교육이나 활동지원에 대한 문의들이 많아졌고 지역에 있는 공동체 관련 중간지원 조직들과 협업해야하는 일들도 생겨났습니다. 협업하는 과정에서 예산적인 측면의 안정된 지원을 할 수 있게 되는 좋은 점도 있었지만 공동체 중간지원 조직이 바라보는 마을미디어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저를 늘 아쉽게 만들었고 저 스스로에게 담당자로서의 질문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마을의 특성이나 대상의 특성을 고려하고 있는가’, ‘때로는 사업적으로만 이 활동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영시미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경직된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과만을 중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등의 질문 말입니다.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대여섯 팀을 포함하여 그간 열다섯 팀 이상이 활동을 시작하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며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속해 온 공간들에게 저는 담당자로서 어떤 새로운 발판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담당자로서가 아니라 활동가로서 역량을 키워서 지금보다 더 깊이 있게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을미디어들이 지치고 힘들 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든든한 영시미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3. 라디오 제작단과 함께  전주지역의 공동체라디오는 오래전부터 지속해 온 ‘DSB(덕진노인방송국)’나, ‘꿈아세 라디오(정신장애인 복귀시설 라디오 방송국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라디오)’ 그리고 조금 더 폭넓게 시민라디오 영역에서 활동에 온 ‘영시미 시민라디오제작단’ 등 여러 공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의 주된 고민인 영시미 전주시민라디오제작단(이하 라디오제작단)은 2005년도 교육을 시작으로 매해 새로운 기수를 양성하면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왕성한 퍼블릭액세스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근무를 시작한 해에는 그 활동이 멈춰있는 상태였습니다. 당시에는 미니FM과 공개방송, 비정기적인 팟캐스트와 인터넷 방송 등 단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을 위주로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긴 시간 달려온 PA활동에 대한 피로감과 매체 환경의 변화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규칙 형태의 느슨한 정관을 만들고, 임원을 세우고, 소규모 자체 행사 진행을 시도하면서 라디오제작단이 가지고 있던 역량을 함께 표현해 나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전주독서대전 행사의 라디오 공개방송에서는 라디오 제작단에서 자발적으로 일부 방송의 편성과 운영을 담당하기도 했고, 제작단 내부에서는 정기적으로 방송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 2018 라디오제작단 양성교육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이번 교육에는 특별히 기존에 마을미디어 팀으로 활동하던 선생님이 참여하셨는데, 굳이 비슷한 형태의 교육을 받고자 했는지 수료식의 소감 나눔의 시간이 돼서야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영시미가 좋아서, 영시미에서 함께하는 분들이 좋고 감사해서 이 교육을 다시 듣게 되었어요. 이익이 만들어지지 않는 곳에도 늘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시는 모습이 어떤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함께 활동하면서 작은 도움이나마 드리고 싶어요.” 영시미가 하고 있는 결과로 보여지지 않는 그 활동에 대해 큰 보상을 받는 것 같은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라디오제작단이 더 많은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라디오를 매개로 소통할 수 있도록 꾸준함으로 함께하려고 합니다.  4. 전국 미디어센터 스태프와 함께  얼마 전 권역별 스태프 워크숍에서 마을미디어를 담당하는 스태프분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라디오를 주 업무로 하는 분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저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이 활동에 대해 고민하고 더 큰 의미를 만들어가신 분들이 많이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활동을 계속 담당하게 될지 아니면 다른 영역의 일을 맡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어떤 일을 맡게 된다 하더라도 그 일이 미디어센터의 의미와 가치를 지속하기 위한 일이였으면 합니다. 오랫동안 이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연대하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함을 통해서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와 영시미에게 그리고 전국에 계신 모든 스태프 분들께 응원을 전합니다.

    글_최란 /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공동체미디어팀
  • 미디어센터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욕에 가득 찼던 영화감독 지망생을 지나... 안녕하세요. 주재형입니다. 저는 현재 수원미디어센터에서 상영사업과 더불어 정책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저를 소개하자면, 영화과를 전공했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시간을 장기간 보냈었습니다. 물론 아직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좀 더 긴 호흡으로 꿈을 바라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연출, 촬영, 편집 등 혼자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학교 작업과 더불어 상업영화 현장에서도 다양한 파트의 일들을 해왔습니다. 이런 다방면에 대한 관심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를 일이지만, 언젠가는 밑거름이 될 거라 믿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경험들은 지금 당장 미디어센터에서 일하는 데 있어서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20대 중반쯤 담당 교수님이 저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영화감독이 되는 자양분을 쌓으려면, 하루에 영화를 4편 정도는 봐야하며, 편식 없는 영화보기, 쓰기, 만들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400번의 구타>를 찍은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와 트뤼포도 비슷한 말을 했기에, 이건 당시 저에게 강력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저는 방학을 이용해 서울아트시네마에 몇 달을 살 듯이 지냈습니다. 낙원상가 4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화의 보고이자 해방구 같은 그곳의 분위기에 전 매료되었고, 집과 극장만 왕복하는 시간을 반복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안면이 있지만 어렵기만 했던 학교 선후배들도 볼 수 있었고, 얘기만 들어왔던 감독, 평론가들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개인적으로 말을 섞진 않았지만, 나도 그들과 동류의 인간이라는 동지의식이 제 마음속에 혼자 싹텄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만나는 영화였습니다. 전 그 영화들을 통해 흥미로운 인물들과 만나 소통할 수 있었고, 과거의 공간을 여행할 수 있었으며, 미래의 시간들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영화들은 강렬하게 저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더불어 선배의 추천으로 등하교 길에 <정은임의 영화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매일 들었습니다. 사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동시대에 함께 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들은 것은 누군가가 개인 사이트에 정리해놓은 녹음 파일들이었습니다. 이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은 1992년에서 1995년까지 정은임 아나운서가 담당 진행자가 되면서, 씨네필들의 보고와 같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감독들인 박찬욱, 변영주 등의 초년 시절 생각들과 정성일, 허문영과 같은 유명 평론가들의 열띤 영화 담론들을 무료로 내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서울아트시네마’의 원류와 같았던 ‘프랑스문화원’ 인물들을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소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이들과 동일 선상에 아니 이들을 넘어선 어떤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참으로 치기 어렸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가능성으로 충만하던 나날이었습니다.  프랑스문화원과 같은 수원시네마테크 되기를 꿈꾸며... ‘프랑스문화원’의 원류를 큰 틀에서 찾아보자면, 아마도 앙리 랑글루아가 설립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발명 이후 제작과 상영의 관점에서만 운영되던 영화시장에, 1900년대 초반 들어 필름 보존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필름은 결국 물질이고,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필름이 훼손된다는 것은 결국 영화가 사라진다는 말이죠. 그걸 우려한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앙리 랑글루아입니다. 스물 한 살인 1935년부터 ‘시네클럽’을 꾸린 그는 독일의 침공 속 수많은 영화가 소실되던 와중에도 다양한 영화들을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해 백방 노력합니다. 그리고 수집한 영화들을 재평가하고 재발견하며 가치 있는 영화들을 발굴해내고, 새로운 영화담론들을 일으킵니다. 이 랑글루아의 ‘시네클럽’은 그 중요성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부각되고, 결국 영화 역사 상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한 곳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됩니다. 더불어, 당시 무료상영을 즐기던 아이들은 ‘누벨바그’라 불리는 새로운 물결이 되어, 프랑스 영화계를 이끄는 주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 때, 시네마테크가 가졌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마도 ‘보존(아카이브)’와 ‘상영(공동체 활동)’이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역할을 지닌 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는 영화와 영상미디어를 꿈꾸던 과거 의욕 가득 찬 젊은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교육 현장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시네클럽’처럼 나름의 길잡이들이 선정하는 양질의 영화들이 무료로 보여지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미래의 ‘토토’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과거 한국 시네마테크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 ‘프랑스문화원’은 사실 영화를 위한다는 목적성이 있던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국의 영화들을 보존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공간을 발견하고 가꿔나간 건 당대의 시네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 문화원이란 공간 속에서 서로를 발견했고, 각자의 노력으로 당시 여러나라에서 VHS 테이프들을 구입해왔습니다. 심지어는 외국 TV방송에서 나오는 영화들을 녹화해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런 열정들이 모여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수혜를 저 같은 사람 또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 비추어, 이런 공간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지역에서도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제가 일하는 수원에선 다양성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미디어센터의 상영관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래서 전 수원미디어센터의 상영관이 이 지역의 시네마테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원시네마테크로서 기능할 수 있으려면... 지역 시네마테크로서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보존(아카이브)의 기능입니다. 특히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들을 보존하는 작업은 정말 중요합니다. 지역의 대학, 시민들이 만든 영화나 영상물들, 더해 일상의 기록사진들은 당장의 가치가 적다하더라고 미래에는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란 결국 기록물들을 수집해서 새로운 역사를 구성하는 일입니다. 전 미디어센터들이 지역에서 이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과거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십년이 지난 후에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개개인들의 노력으로 이런 아카이브 기능을 살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다음으로 우리의 역할은 말 그대로 ‘상영(공동체 활동으로서의)’입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장 보편적인 오락행위가 된 지금, 이를 통해 새로운 담론과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하는 행위를 경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상영’ 행위를 확장해, 지역의 작은 ‘영화제’를 여는 것은 일종의 해방구가 될 것입니다. 사실 기존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해 있습니다. 상업영화 1편의 평균 제작비가 50억이 넘어가는 요즘, 그 지점은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틈 사이사이에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다른 한편의 현실입니다. 자본 하에선 말할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그 속에 있습니다. 이런 가치 있는 영화들이 전국 집계 만 명의 관객들도 만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게 정당한지 따져보는 건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이게 현실이라는 건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지역의 시네마테크에 작게나마 ‘영화제’가 존재한다면, 한정된 시간동안 그간 만나지 못했거나 가려져왔던 담론들과 이야기들이 분출되어 일시적으로 충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정말 흥미로운 일입니다. 기성 논리에 닫혀있던 문을 잠시나마 열고, 개별 생각들을 소리칠 수 있는 축제 공간으로서의 역할, 이것도 전 미디어센터에 요구되는 역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중요한게 아닐까... 미디어센터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려 해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미디어’란 단어가 주는 폭넓음에 짓눌려, 오히려 소극적인 미디어활동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많았습니다. ‘매스미디어’가 사라지고 ‘소셜미디어’가 도래하는 세상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또 지역에 따른 개별 현실적인 제약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결국 중요한건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거의 시네필들이 시네마테크를 만들어 스스로 의미와 공간을 창출해냈듯, 우리도 고민하고 실천하여 미래의 미디어센터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위에 적었던 것처럼, 저 나름 미디어센터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나 자신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이루어 가보려고 합니다. 

    글_주재형 / 수원미디어센터 공동체미디어팀
  •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곳, 여기는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입니다

    안녕하세요.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이경민입니다.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스탭워크샵이나 정기총회에 간간히 참석하고 있지만, 인사를 제대로 못 드린 것 같아 낯선 얼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이렇게 글이라도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1장. 이 길이 내 길인가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이하 센터)가 2006년 10월에 개소식을 가졌으니 다음 달이면 꽉 찬 12년입니다. 그 말은, 저도 센터에서 일을 한지 12년이 되었단 소리네요. 12년이라니.. 12년이면 제가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하던 학창시절을 보낸 것과 동일한 시간입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발산하지도 못했던 그 시기. 꿈도 없었고, 패기도 없었고, 열정도 없었던 그 시간을 보내고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가고싶어 간 거 아님) 미디어영상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정말 무모했죠. 방송이나 신문에는 1도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관심이 없으니 학과공부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수업만(!) 열심히 듣다가 오랫동안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도피차 과감히 휴학계를 던졌는데요. 탱자탱자 놀던 어느 날,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자기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이 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만두려고 하니 해보지 않겠냐고.. 그렇게 미디어센터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센터가 업무를 시작한지 3개월이 되던 때였고, 이제는 퇴직하신 남일우 센터장님과 여전히 꿋꿋이 그 자리를 잘 지키고(?)있는 윤정록팀장님, 두 분만 계실때였습니다. 제가 맡은 첫 업무가 사무보조로서 시민영상제작과정 2기(지금은 26기까지 진행했네요)의 수강생 명단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오래 이 곳에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2장. 이경민의 운명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는 타 센터와는 조금 다른 운영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부서의 경계도 희미한 편이구요. 업무분장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센터 스텝 개개인이 사업계획서도 작성해야하고, 강의도 해야 하고, 결과보고서도 써야하죠. 센터 설립 초기에는 개인적으로 다큐를 제작하는 것 또한 업무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해서 꽤나 부담스러웠는데, 모든 업무를 각자의 자율성에 맡기는 편이라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의 큰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주로 초등학생, 결혼이주여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사업을 담당하고 있구요. 센터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들의 회계·정산도 직접 관리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센터와 사람들’의 원고를 작성하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복기해봤더니, 역시 첫 수업과 첫 개인 다큐 제작할 때의 기억이 먼저 떠오르더라구요. 학창시절 남들 앞에 서는 걸 두려워 해 일어나 책을 읽거나 발표 한 번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는데 입사한지 2년 뒤인 2008년에 수업을 하나 맡게 되었습니다. 사무보조로 업무를 시작하긴 했으나, 센터에서 계속해서 일을 할꺼라면 부딪혀 깨져봐야한다고, 센터장님이 억지로(?) 시키셨던거죠.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수업 예시자료를 찾고, PPT를 만들고, 가르쳐야 할 내용들을 큐시트 종이에다 인사말부터 맺음말까지 작성한 다음 온종일 중얼중얼 외우고 다녔죠. 운 좋게도 인성 바르고 적극적인 초등학생들을 만나 수업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수업을 할 때도, 교육을 수료하고 난 뒤에도 그 첫 수업은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5학년이었던 그 아이들이 이젠 대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간간히 만나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그러다보면, 참 시간이 빠르다.. 느끼는 요즘입니다) 돌이켜보면 수업을 재밌어하고, 수업시간을 기다려주고, 수료할 땐 눈물범벅으로 고맙다고 이야기해주는 수강생들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 무쓸모는 아니라는 안도감, 더 잘 해보고 싶다는 성취감 덕분에 그 힘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미디어교육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드네요. 3장. 젖은 낙엽처럼지금의 ‘이경민의 인생’ 중 8할은 센터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껍니다. 일을 시작하며 성격도 많이 바뀌었구요, 센터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여전히 고민을 나누고, 힘들 땐 위로를 받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가지 부침이 참 많습니다. 회사의 경영 논리에 의해 센터의 존재가 부정당하기도 하고, 운영구조가 취약해 매달 인건비를 걱정해야하며, 센터의 자랑거리였던 시청자참여프로그램 편성을 대폭 축소하기도 했습니다.지역에서 12년을 퍼블릭액세스와 시청자 영상주권을 위해 노력한다고는 했는데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한 해 한 해를 꾸역꾸역 버텨오고는 있지만, 센터 스탭들의 피로는 늘어가기만 하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센터를 통해 배움의 기회를 얻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는 수강생분들, 취미로 센터를 찾았다가 미디어 교육강사로도 활동하시게 된 외부 강사님들, 그리고 센터를 거쳐 간 소중한 인연들이 시간이 지나서 다시 찾아오셔도 추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딱 붙어 이 자리를 지키고 싶은게 요즘 저의 바람입니다. 언제까지 미디어교육 현장을 누빌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지역사회에서 사랑받는 미디어센터가 될 수 있도록 꾸준히 현장에서 만나 뵙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글_이경민 /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 교육팀장
  • 재미동 이니까 재밌게! : 재미동 휘~

    안녕하세요. 오!재미동에서 상영과 홍보와 전시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이진희입니다. 오!재미동에 딱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채워 나가고자 스리슬쩍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재미동 100평에 달하는 개성 강한 공간들을 허전하지 않게 메워 나가고 있는 다섯 명의 어벤져스 군단 중 2호 입니다. ‘영상에 발담그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재미동은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프로그램과 기초 교육을 지향합니다.  신문방송과 영상을 전공으로 삼았던 저는, 수업 시간 중에, 미디어센터를 견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래지 않아, 다시 오!재미동에 오게 되었고, 그 때 와는 결이 다른 시간들을 이렇게 오래 재미동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일하기 전, 제게 재미동의 인상은 ‘키치’ 였습니다. 지렁이 의자가 있었고,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각각 영화나 책을 보고 있던 모습도, 어둡게 꾸며진 복도와 그 안에서 보았던 블랙 이와이의 ‘피크닉’이 남긴 인상도, ‘피블스를 만나요’를 상영 했던 그 용기도. B무비랄지 마이너한 감성도 얼마든지 존중 받을 수 있는, ‘키치함’. 그것이 재미동의 커다란 매력이었고, 지금도 그 인상을 이으려는 노력은 이어집니다.  서울, 그 한 복판에서.  지방에서는 미디어센터의 존재 자체가 일정 부분의 사명과 의미를 가진다면 서울은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온갖 문화적인 활동이 자유로운 이 곳은, 미디어센터가 여섯이나 있고, 미디어센터와 중복되는 기능을 수행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들도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서울 한 복판, 3,4호선 환승역인 충무로역 지하 1층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재미동은, 환승하다가도 들를 수 있는 곳 입니다. 하여 굳이 지역을 기반 하지 않는 것 어떤 이름하에 너와 나를 가르지 않고, 누구나 환영 받는 것이 오!재미동의 특별함이기도 합니다.  충무로라는 단어가 아직도 관습적으로 영화씬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기는 합니다만, 충무로에는 영화를 기억할 만한 것들이 이제 거의 없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는 필름 모양 가로수같은 소소한 사업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안타까운 지경에 머무르고는 합니다. 시네마테크의 건축과 더불어 충무로에 영화색을 입히는 작업들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그 속에서 오!재미동은 ‘아! 역시 충무로’ 하는 시민들의 영화 그리고 문화 놀이터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아주 희한한 문화 공간, 오!재미동오!재미동이 갤러리를 본격 가동한 것은 2011년 3월. 쫓겨나갔다가 충무로역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부터였습니다. 새로운 공간의 기획 단계에는 부재했으나, 시공이 완성될 즈음 이 사실을 알게 된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 것을 운영할 사람은 저 밖에 없는데 전시 경험이 일천하다는 것이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당시 오!재미동의 출간물 디자이너와 몇몇 작가님들과의 대화 그리고, 재미동의 위치와 정체성을 고려해 신진작가와 함께하는 전시장으로 방향성을 잡게 되었습니다. 미디어센터 이지만 시각예술을 표현하는 데에도 성역 없이 열려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고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오!재미동의 아카이브라면, 갤러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며 늘 같은 분이 찾아도 새롭도록 역동성을 부여합니다. 희한한 영상센터로서의 입지도 아마 갤러리에서 방점이 찍히는 것이겠죠.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할애한 지면이 너무 부족하답니다!  독립영화만?이런 것 까지 신경 쓰는 건 아마 알 수 없었을 거에요!오!재미동은 자체적으로 아카이브를 운영하며 소소하게 아카이빙을 진행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아카이브에서는 인디 밴드의 노래를 주로 선곡 하고 있습니다. ‘언니네 이발관’처럼 메이저급의 노래들도 물론, 제가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 독립출판물 들도 여럿 만날 수 있습니다. 오!재미동 아카이브에서는 ‘티’ 나게 ‘독립’ ‘인디스러운’ 것들을 모아 보여드리는 중입니다. 그러느라고 새로 나온 인디 음악을 찾아 듣고, 독립 출판물이 즐비한 작은 서점에 일부러 들르고 하는 것들을 통해, 문화씬을 두루 살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재미동에서 일하는 즐거움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항상 과도기 오!재미동 오!재미동은 기존의 구획된 공간에서 한계를 느끼고 약간의 변화를 계획 중입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정제된 형태의 교육 위주로 진행될 예정이고, 편집실도 기존 대비, 수를 줄이면서, 더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모양새를 달리 할 예정입니다. 1인 미디어의 시대, 기존 미디어 리터러시의 함양이나 접근권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떤 기준으로 고르고, 어떻게 해석 할 수 있어야 건강한가에 대한 고민들이 접합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동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들은 그러한 고민에 대한 명료한 해답이 되어 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려 합니다.  어떻게든 즐거울테다! 다들 저마다의 일과 주어진 역할이 있고, 그 만큼의 힘겨움과 고민을 안고 그 자리에 계시겠죠. 저도 오!재미동의 구성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스스로 재미있는 활동들을 일과 접목시킬 수 있기를. 지난 5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서현우’ 배우님을 저희 교육 프로그램 ‘엔딩 크레딧 사람들 : 배우편’ 강사로 모셨습니다. 씬에서 핫 한 배우님을 잘 모셨다는 외부의 호평도 있었지만, 배우님도 강의를 처음 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고, 저에게는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관과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어 힐링이 되어준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센터에서 되도록 티 나지 않게, 사사로운 욕심을 투영해 가며 즐겁게 일하려 노력중이랍니다. 여기 저기 꼭 벤치마킹 하시기를 바라면서! 그것이 비록 마이크로 미니 일지라도, 소확행 늘 이루시면서. 건강하시고, 부모님 건강도 잘 챙기시는 비교적 편안한 하루 하루 되시기를 바라옵니다!

    글_이진희 /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차장
  • 의정부시민의 행복한 삶을 책임지는 문화공간으로

    안녕하세요? 의정부영상미디어센터의 살림을 맡고 있는 운영지원 팀장 지선호입니다. 미디어센터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13년 입니다. 영화를 전공하고 다양한 현장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미디어센터라는 곳과 인연이 되어 성북구, 고양시, 수원시를 거쳐 의정부시에 오게 되었습니다. 혹자들은 개관전문 요원? 이라 부르더군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다양한 지역과 업무를 경험하게 되었고 현재는 의정부영상미디어센터에서 저에게 주어진 소임과 미디어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센터의 목표와 함께 제 인생 궁극의 목표를 함께 이루고자 노력중입니다.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도구로서 현대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증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매체 중에서도 영상이 가장 활용도가 높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기술 하향 평준화가 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에 다양한 교육을 지원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주어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미디어센터의 존립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 미디어센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으며 그 숫자도 많지 않은게 사실이죠. 앞으로 미디어센터의 무한한 잠재성을 평가하여 민•관•학이 함께 건전한 미디어 생태계 조성을 위하여 노력하고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작년 4월에 개관한 의정부영상미디어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의정부시가 공동으로 설립하고 신한대학교가 수탁기관으로 선정되어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신한대학교 도서관 1층에 위치하고 있지만 우려와는 달리 의정부시민 이용율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시민들 이용 수요도 늘어 가고 있습니다. 경기 북부의 거점 센터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과 아이디어로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의정부시의 문화 아이콘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고 있으며 이에 센터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과 방향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4차 산업혁명과 융합교육 4차 산업혁명의 본격화와 함께 지금의 미디어콘텐츠 교육의 판도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물론 공동체를 이루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도구로서 미디어교육은 그 간 영상 제작 워크숍 등의 사업으로 시민들과 함께 기획자들도 많은 자긍심을 가질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인물이 되지 않고자 흐르는 물에 편승하여 좀 더 다양한 미디어 영역을 시민들에게 경험해 주려 하고 있고 어떤 것이 주목 받고 있으며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여 융복합 교육의 기초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코딩 프로그램을 이용한 로봇코딩 만들기, 3D 프린터 모델링 프로그램을 이용한 디자인과 다양한 사물 만들기, 드론을 활용한 IT이론과 미디어 활용 프로그램, 힙합과 댄스 그리고 미디작곡을 융합한 창의성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동참하는 청소년들의 열정 또한 대단 합니다. IT 강국 대한민국 인프라 속에서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 휴대 기기를 남녀노소 구별 없이 실생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를 100% 활용할 수 있는 실무교육과 더불어 미디어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자세, 소중한 의견 나눔과 존중 등의 소양 교육도 같이 진행 함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좀 더 다가가고 이해하는, 소수의 목소리도 간과하지 않는 민주적인 소통 방식에도 교육의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시민이 주도하는 상영관 프로그래머가 주도하여 엄선된 작품만을 관람하는 단방향의 형식이 아닌 시민들이 주도하여 직접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양방향 상영관을 지향 하고자 합니다. 세상은 전문가의 영역이 무색할 만큼 모든 정보가 열려 있습니다. 프로그래머란 단어조차 생소한 시민들에게 상영관이 어떻게 운영되어 지는지, 상영작 선정은 어떻게 하는지, 나아가서는 지역 특성에 맞는 시민들만의 영화제는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며 그들로 하여금 시민들이 원하는 상영 프로그램, 지역 영화제 등을 기획하여 다양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 하고자 합니다. 비록 96석의 단관이지만 여느 개봉관 못지 않은 창의적인 기획과 프로그램으로 의정부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공간, 문화공간, 사랑방으로 탈바꿈 되어 가고 있습니다.시민 행복 프로젝트 의정부시의 ‘행복’ 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미디어를 활용한 시민 행복 프로젝트를 매년 기획해서 운영하고자 합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 아나로그 테이프로 서랍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추억의 영상물들을 디지털로 변환해 시민들에게 서비스 함으로서 다시보고 싶은 결혼식, 돌잔치, 회갑연 등의 영상물을 가족간 이웃간 다시 보며 화목한 가정과 세대 간의 소통을 도모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다음해의 프로젝트는 어떤 행복 아이템이 될지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_지선호 / 의정부영상미디어센터 운영지원 팀장
  • 지역민과 함께 서산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생활문화공간 만들 것

    반갑습니다. 저는 서산문화원(서산영상미디어센터)에서 운영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철입니다. 평생교육을 전공하고 있던 1997년에 서산문화원에서 실습을 한 계기로 지금까지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문화원은 지역문화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의 발굴, 보존, 계승하여 지역발전의 동인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역의 공공기관입니다. 평생교육프로그램, 향토지발간, 학술세미나, 지역축제 등 지역의 정체성 확립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산영상미디어센터를 문화원이 위탁 받으면서 사무국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문화원에서 쌓아온 일련의 사업과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미디센터에 채용된 전문직 직원들과 소통을 통해 창의적이며 실효성 높은 사업, 시민들의 영상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업들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이 원고를 통해 서산영상미디어센터를 설립하게 된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하며,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계시는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회원분들과 교류하며 많은 조언과 협력을 구하겠습니다.   세번의 설계변경과 3년 간의 준비  대도시와 달리 시민들이 영상문화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전무했던 도농복합도시 서산에 출산의 고통만큼 힘든 과정을 넘기며, 영상미디어센터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서산영상미디어센터의 설립은 2015년 4월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건축된 지 18년이 되어가는 서산문화원사의 노후로 리모델링을 통한 현대화 시설이 필요했던 터라 서산시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미디어센터를 유치하는 초안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충남도를 거처 문화체육관광부의 최종검토를 받고, 이후 기재부의 투자심사와 예산확정까지 8개월의 시간을 투자해 국비를 확보 할 수 있었습니다.  국비와 시비 25억을 확보하고 실시설계를 한 결과, 우리가 원하는 밑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안전진단으로 지출되는 내진보강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세 번의 실시설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답을 찾을 수 없었고, 확보된 예산으로는 더 이상 사업추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숨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공사기간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원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고 원장님과 이사님들이 힘을 모아 서산시와의 유기적인 조율을 통해 6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 번의 설계변경, 추가경정에서의 예산확보 등으로 공사기간이 대폭 늘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에 쫒기며 추진하는 공사현장에서 부실공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꼼꼼히 챙겨보는 몇 달의 과정 속에서, 실행계획서를 제출하고 3년이 되는 지난 3월 23일 드디어 개관식을 가질 수 있었다.  서산문화원의 경험과 자원을 통한 콜라보  서산영상미디어센터는 문화인프라가 형성되어 있는 서산문화원에 자리해 사업을 추진함에 많은 장점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1년동안 1200명의 수료생을 배출하는 ‘지역문화학교’, 100여명의 어른신들이 문화사절단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노인사회활동사업’‘어르신문화프로그램’ 등 전시회 및 각종 공연을 개최하며 1년에 3만여명의 시민들이 방문하는 접근성이 용이한 문화시설의 중심 속에 미디어센터를 유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산문화원은 이준호 원장님을 필두로 근무하는 직원들을 보면, 평생교육전문가, 복지전문가, 문화예술전문가, 행정회계전문가, 축제전문가들이 10년 이상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양질의 다양한 사업들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1년도와 2016년도에 최우수문화원으로 선정되어 국무총리상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객관적으로도 업무능력을 인정 받은 탄탄한 조직입니다. 이러한 구성원의 콜라보를 통해 시민들이 그동안 접하지 못한 사업들을 차근 차근 준비하려고 합니다.  먼저,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스피치 교육’, 인터넷을 활용한 라디오방송‘서산팟캐스트’, 아마추어 방송작가 육성을 위한 ‘시나리오 제작’, 오지와 도서지역을 방문하는‘찾아가는 영화관’, 아나운서와 기자 등 유명 방송인을 섭외하여 학생들 교감하며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진로체험의 일환인‘진로토크콘서트’, 서산의 정체성이 담긴 문화자원을 활용한‘기록물 제작’, 시니어의 네트워크 활용을 촉진시키기 위한 ‘SNS미디어교육’, 시민기자가 되어 서산지역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행사와 축제 등의 정보를 전달하는‘내고장 알림사업’학교동아리와 연계한 ‘동아리활성화사업’ 등 이밖에도 시민들의생애주기별눈높이에 맞는다양한프로그램을 발굴해 추진하고자 합니다.    정보화시대 미디어에 대한 일반교양을 범시민적으로 함양 할 수 있도록, 전문가와 일반인, 소외계층(다문화가정, 이탈주민, 저소득층) 등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프로그램에 참여해, 일상적인 삶을 표현하는 서산의 새로운 생활문화공간으로 ‘서산영상미디어센터’꽃피길 기대해 봅니다.

    글_김영철 / 서산문화원(서산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 화천생태영상센터 ‘30대 막내 김남환’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7년부터 화천생태영상센터에서 일하는 김남환 PD라고 합니다. 처음엔 모든 사업의 보조 담당자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화천생태영상센터에서 미디어 교육, 미디어 체험, 제작 동아리 지원, 자체 미디어 교육 강사, 장비 관리, 상영사업, 지역 군민과 함께하는 지역 기관 홍보영상 수주, 각종 센터의 홍보지와 같은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여러 다른 미디어센터에서 자신이 담당하시는 업무를 소개하시던데 저는 제가 지역 센터에서 하고 있는 일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드네요.아 뭐할까? 방송국은 가기 싫은데... 2012년 대학에서 방송영상미디어학과 3년 과정을 졸업하여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딛었던 곳은 미디어센터가 아닌 방송국이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서 커피 한잔을 들고 바쁘게 걸어다니는 방송가의 일원이 될 것을 상상하며 들뜬 마음으로 일을 시작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꿈꾸던 이상과 너무 달랐죠. 매일을 방송이 나가는 단 하루를 위하여 살아야했고 친구는커녕 가족도 신경 쓸 수 없는 일상의 반복이었죠. 그때 당시 저는 ‘번아웃’ 됐다는 말이 가장 잘 맞을 것 같아요. 그러던 와중 졸업한 대학에서 전공 실습기사 자리로 와줬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아 고민 없이 이직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방송 전공 학생들에게 영상 제작 지도와 방송 장비 사용법 등을 교육하며 ‘나름’ 심도 깊은 학문적 기술적 소양을 쌓았습니다. 제가 지금 센터에서 미디어교육부터 디자인까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당시 혼자 다양한 일을 해냈어야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실습기사로 일하는 동안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것 보다 미디어 분야에 있어 지도와 교육 등 제작활동을 지원하는 일에 관심이 높아졌었고 미뤄놨던 4년제 학사를 졸업한 뒤 미디어 활동 지원에 관한 일들을 찾아보게 됐습니다. 결국 제 눈에 띈 곳은 미디어센터였고 2017년 초 대학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지금 이곳 화천생태영상센터로 오게 됐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미디어센터? 이 질문에 대해 아직도 매일매일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히 지역민들의 미디어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곳으로 생각 했습니다. 아직도 미디어센터의 정의를 내리라면 ‘미디어센터란 지역민들의 미디어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곳’이라고 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단어로 표현된 저 문장 안에 생략된 생각과 내용들이 아주 많아졌죠.최근에 가장 강력하게 미디어센터 직원으로써의 제 사명 의식을 들게 하는 것은 자치 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의 역할입니다. 방송을 비롯한 모든 언론과 미디어는 한가지 의견을 지속적으로 대변하거나 그들만의 소리를 모두의 의견인 것처럼 내서는 안되며 소수 또는 반대의 의견 역시 함께 전달하거나 존중해야 합니다. 지난해 새 정부 5년간의 자치분권 추진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였고 자치분권 로드맵은 ‘내 삶을 바꾸는 자치분권’이라는 슬로건 하 연방제만큼 강력한 지방분권을 목표로 5대 분야 30개 추진과제로 구성하였습니다. 지역민 하나하나의 의견이 소중하게 반영될 수 있는 자치분권형 정치구조에서 지역미디어센터는 의사결정을 하는 지방부처와의 주요한 소통수단이 될 것입니다. 풀뿌리 주민자치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역민의 참여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그들의 역량을 최대로 발현할 수 있게 하는 우리 직원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입니다. 직원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보다 그들이 스스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그에 대한 기술적ㆍ교육적 지원을 수행하는 것, 그것이 지역미디어센터를 운영하는 직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향적 정치구조에서 상향적 정치구조로 변화되는 모습과 풀뿌리 주민자치라는 큰 퍼즐을 맞추는데 있어 우리 지역미디어센터의 직원들은 작은 한조각의 퍼즐이며, 그 한조각의 퍼즐들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매우 다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다양한 역할 수행이 가능한 미디어센터의 박지성 제가 하는 업무는 미디어 교육 사업, 미디어 체험, 제작 동아리 활동 지원, 자체 미디어 교육 강사, 방송 시설ㆍ장비 관리, 상영사업, 지역민과 함께하는 지역 기관 홍보영상 수주, 각종 센터의 홍보지 디자인까지 모두 8가지 일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미디어센터와 생활문화센터를 함께 운영하는 화천생태영상센터만의 독특한 특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직원의 수는 일반적인 소규모 미디어센터 직원의 수와 비슷하지만 내부에서 미디어 파트 전담 직원과 생활문화 파트 전담 직원으로 나뉘어 각자 전문 분야의 일을 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우리센터에서는 직원 1명당 담당해야 하는 분야는 다양할 수밖에 없으며 그 사업에 대한 최소한의 역할과 이해를 갖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전 대학 실습기사로 일했던 업무와 질적ㆍ양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부분이 있어 큰 문제없이 사업들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거기다 올해에는 공석이던 미디어 파트 전담 직원이 채워져 미디어 체험과 상영사업은 담당하지 않게 되어 남은 담당 사업들에 대한 연구와 발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미디어센터의 역할 그리고 미디어센터 직원으로써의 태도를 각성하게 된 계기! ‘국민마이크 in 화천’! 8개나 되는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던 만큼 다양한 사업과 활동들이 떠오릅니다. 민통선 내부로 들어가 7사단 장병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찾아가는 영화관’도 생각나고, 봄부터 꾸준히 찾아와 용돈 아껴가며 작품 활동을 하던 화천고등학교 영상제작 동아리인 ‘NOW UCC ME’ 지원 활동도 생각납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제가 미디어센터의 직원임을 인지하고 단기적 목표가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일할 수 있게 된 계기는 ‘국민마이크 in OO’ 사업이었습니다.자치분권을 통한 지방자치의 가장 기본은 그 근간이 되는 주민, 시민들의 의견이며 그런 의견들을 수렴하기 위해 국민인수위원회 차원에서 진행됐던 ‘광화문1번가 국민마이크 in OO’ 사업은 미디어센터의 역할이 단순한 취미생활의 지원이라는 차원을 넘어 소수의 의견, 지역의 의견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시각을 일깨워준 활동이었습니다. 강원 산간 시골 외곽지역의 지역민들은 이기주의적이며 무지하며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정치적인 성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깰 수 있게 해준 사업이며 진보에서부터 보수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정치적 의견과 농촌지역인 화천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지역의 문제와 이슈까지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멈춰있는 사람들이 아닌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화천이라는 강원도 산골 작은 지역에 대한 애착을 형성시켜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화천생태영상센터 지하에 마련된 작은 녹음 부스 앞에 어색하게 앉아 품 속에 넣어두었던 꼬깃꼬깃한 메모지 한 장과 안경을 꺼내 떨리는 목소리로 한음절, 한음절 소중하게 녹음하시던 지역의 어르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곳에서의 매일 아침 업무를 시작합니다. 지역민, 그들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미디어센터를 목표로! 현재 저를 비롯한 화천생태영상센터의 직원들의 목표는 충성도 높은 고객층과 전연령을 아우를 수 있는 복합 문화 컨텐츠 공간으로의 발전이라는 두가지를 잡고 있습니다. 지금도 충성도 높은 센터 이용객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 수가 자랑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어린이, 청소년, 장애인, 노인까지 전연령과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지역센터를 목표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선 군인가족과 주부들을 대상으로 미디어교육과 제작을 통한 지역 미디어 활동가 양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활동가 모집 중 그들의 대다수가 단순히 결혼을 통해 화천으로 이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지역에 숨어있는 잠재 인재들을 센터의 운영과 목적에 맞게 결합하여 활동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는 중입니다. 아직까지는 지역의 다수를 아우르고 있는 노인층을 미디어센터로 흡수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농업이 지역의 주산업으로 구성되어 매일 같이 밭과 논으로 가셔야하기 때문에 어떤 정기적인 활동에 어려움을 느끼고 게십니다. 따라서 노인층에 대한 미디어 혜택과 교육적 지원을 진행하는 것에 가장 큰 고민이 있으며 올해 미디어 교육으로의 접근을 우선 시행한 뒤 수요와 수준을 파악한 후 실버 미디어 제작단과 같은 노인 미디어 전문가 지원 프로그램을 새롭게 진행할지 아니면 그들의 삶을 그려주는 노인영상자서전 제작 사업을 기존처럼 진행할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종적으로는 미디어센터와 생활문화센터를 같이 운영하는 우리 센터의 특징을 살린 전문 생활문화 1인 크리에이터 양성과 같은 미디어와 생활문화, 두가지 컨텐츠의 융ㆍ복합을 거친 사업을 추진하고 싶습니다.화천센터 막내가 미디어센터 직원들에게 보내는 한마디 2017년 겨울 전미협 주관 워크숍에 참가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지역은 아니었지만 강원이라는 지역적 공통분모를 갖고 모였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노력, 고민 그리고 희노애락까지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좋은 자리였습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전개되는 사업들을 함께 공유했고 사업의 성패를 떠나 그 사업을 하며 고생했을 담당자들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함께 사업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질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미디어센터에서 일을 하지 않아 다른 센터 직원들에게 한마디 전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미디어센터라는 공통 주제를 함께 다룰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한마디 전하겠습니다. 각각의 위치에서 하시는 일들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해주시고, 조금만 더 고민해주시고, 조금만 더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많은 고민들을 고개 돌리면 보이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의 미디어센터 직원들 모두 행복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빛날 수 있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파이팅!!

    글_김남환 / 화천생태영상센터 PD
  • 양산영상미디어센터 방용훈 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양산영상미디어센터(이하 양산센터)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방용훈 입니다. 영상 일을 한지는 올해로 8년 차가 되었고 그중 미디어센터에 일한지는 올해로 3년차가 되었습니다. .   미디어센터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컴퓨터과학을 전공하였지만 당시 스티브잡스가 한 대학의 졸업식에서 “직업의 선택이 우리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듣고 충격을 받아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학창시절 부모님의 반대로 하지 못했던 영상제작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디렉터로 꾸준히 일을 하다가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던 중 같이 일했던 촬영감독님의 추천으로 양산센터에서 체험강사로 일을 할 기회가 생겼고, 다양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점에 매력을 느껴 2016년 1월 5일부터 양산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산영상미디어센터에 대하여 양산센터는 2015년 11월 27일에 개관한 전국에서 가장 작은 미디어 센터입니다. 144제곱미터의 면적에 스튜디오, 조정실, 편집실 그리고 10명을 교육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한 데 모여 있습니다. 현재 진행하는 교육의 대부분이 제작교육이며 지역의 수요 또한 제작교육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센터를 담당하는 직원이 한명이라 운영상의 어려움이 많은 실정입니다. 그러나 부족했던 것들을 하나 둘 씩 채워나가고 있으며, 앞으로 센터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확장시켜 나가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민은? 올해 처음으로 퍼블릭액세스를 추진했었습니다. 하지만 인력문제와 시기적인 문제가 맞물려 계획이 무산되었습니다. 앞으로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여 빠른 시일 내에 퍼블릭액세스를 실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양산센터는 규모와 양산의 지리적 특성에 의하여 극복해야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그로 인하여 찾아가는 교육을 확대할 예정이며, 그에 꼭 필요한 인력 확충문제를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도록 노력하여 시민들을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_방용훈 / 양산영상미디어센터 주무관
  • 미디어센터 수강생부터 스태프까지

    김수민은?안녕하세요.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운영팀을 맡은 김수민입니다. 주로 회계업무와 홍보업무를 합니다. 가끔 영상을 만들고, 글을 씁니다.미디어센터 수강생부터 스태프까지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와의 인연은 12살부터였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동아리에 들고 싶었죠. 때마침 아는 분이 영상동아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이하 센터)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때는 영상미디어센터가 뭐 하는 곳인지 몰랐죠. 센터에서 영상 만드는 법도 배우고 촬영도 했어요. 동아리는 금방 해체됐지만, 저는 센터에 계속 다니면서 다양한 교육을 들었어요. 공동체 라디오 수업, 다큐멘터리 수업, 극영화수업, 시나리오 수업을 들으면서 다양한 미디어를 접했고, 센터 쌤들과 친해졌죠. 센터를 통해서 배운 게 많아요. 가장 큰 건,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에요. 영상을 만들면서, 라디오를 만들면서,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지 깊게 들어가는 법을 배웠어요. 미디어 제작을 하면서 골프장을 반대하는 주민도 만났고, 음악 하는 분도 만나고,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주민도 만났어요. 페미니즘도 배우고 LGBT도 알게 됐죠. 영상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다양한 아픔들을 담아냈어요. 계속해서 마주하는 연습을 했죠. 미디어제작을 하지 않았다면, 쉽게 그 이야기들을 무시했을 것 같아요.저와 같이 센터에서 수업 듣던 청소년이 10명 정도 있었고, 그 사람들이 모여서 영상동아리‘(겨울엔 영화를 찍자!)겨울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3년정도 꾸준히 방학마다 영상을 만들었어요. 극영화를 제작하고 다큐멘터리도 만들었죠. 센터의 지속적인 컨설팅과 공간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영상동아리가 청소년예술단체 ‘세손가락’으로 발전했습니다.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었거든요. 세손가락에서는 연극, 영화제, 미술전시, 잡지 만들기 등의 활동을 했어요. 저는 주로 회계, 라디오 제작 등의 일을 했습니다. 겨울협의회와 세손가락을 통해서 협동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이 동아리로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얻었죠. 근래에도 자주 만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저는 20살이 넘어서도 대학을 가지 않았어요. 불안할 때도 많았죠. 센터와 세손가락이 제 삶의 근거지가 돼서 강릉에 계속 있을 이유가 됐어요. 처음에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센터가 저에게 큰 의미가 됐죠. 센터에 다니면서 진로도 많이 바뀌었어요. 센터가 제 학교였죠.2017년, 독립영화와 관련된 강릉사람들이 모여 ‘사회적협동조합 인디하우스’(이하 인디하우스)를 만들었어요. 2018년 1월부로 인디하우스가 센터를 위탁했죠. 채용공고가 떴고, 저는 운영팀에 지원했습니다. 오랫동안 봐왔던 센터의 역할을 직접 하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센터 스태프가 되었습니다.예전에는 센터에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점이 직원으로 있다 보니 이해가 되고, 센터 이용자로는 생각할 필요 없었던 책임감을 느끼기도 해요. 아직까지 제가 운영팀장이라는 것도 실감이 안 나고, 이 일을 할 만한 역량이 있는지 매번 고민한답니다. 이제 일한 지 두 달을 겨우 넘겼는데, 그 와중에 회계 때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사회적협동조합 인디하우스?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강릉에는 강원도 유일의 독립예술영화극장 신영도 있고, 미디어협동조합 이와, 강릉씨네마떼끄,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 그리고 올해로 20주년 되는 정동진독립영화제도 있어요. 보수적인 도시지만 독립영화 관련된 곳이 많죠. 이 자원을 바탕으로 2017년에 강릉시가 독립영화도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강릉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독립영화도시였죠. 이 흐름을 타서 독립영화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 허브를 해줄 단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인디하우스를 만들게 됐습니다, 인디하우스 목표는 크게 세 가지에요. 독립영화 중심 영상문화의 저변 확대와 지속가능 발전, 지역문화 예술인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입니다. 지금은 목표에 어떻게 도달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계에요.지금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는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위탁단체가 바뀐지 이제 두 달을 넘겼죠. 그래서 비전도 만들어가는 중, 홈페이지도 만들어가는 중, 장비공간 사용법도 만들어가는 중이랍니다. 장단점이 있다고 느껴요. 아직 우왕좌왕하는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이 좋아요. 지금 센터 스태프들은 건강한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요.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칼퇴근 문화를 지향하고요. 며칠 전에는 다 함께 반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았죠. 지금은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 평등문화 약속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서로 자주 의견을 나누면서 맞춰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센터의 역할고민도 계속 하고 있죠. 어떻게 해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센터가 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미디어제작가를 양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하고 싶은 것들, 센터 안과 밖에서.저는 청소년교육과를 다니고 있어요. 공부하면서 주로 생각하는 건 청소년 인권이에요. 청소년은 쉽게 대상화 당해요. ‘파릇파릇하다’ ‘창의력이 넘친다.’ 혹은 ‘중2병이다.’ ‘미숙하다’는 이미지가 씌워져요. 이 이미지에 따라서 평가당하고,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사람이 적죠. 청소년 인권이 낮은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런 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센터에서는 청소년 미디어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만큼 청소년인권고민도 해야겠죠. 센터의 교육을 통해서 많은 청소년들이 개개인의 이야기를 미디어로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경험을 통해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센터에서는 그 이야기들을 아카이브 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죠.미디어제작자 인권 증진도 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디자인이나 영상제작을 하면 열정페이 당하는 경우가 많죠. 저도 많이 겪었고 억울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강릉은 특히나 보수적인 도시라서 이런 인권을 시민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심지어 가끔은 시민단체에서도 예술가의 열정페이를 요구할 때도 있어요. 센터 목표 중 하나가 미디어제작가 양성이에요. 기능 교육만큼이나 기본 권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미디어제작가가 강릉에서도 먹고 살 수 있는 터전과 문화를 만들어놔야 진짜 독립영화도시가 될 수 있겠죠.이번에 미디어스코프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좋았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거든요. 바빠져서 글 쓸 시간이 많지 않은데, 이렇게 기회가 생기면 참 좋아요. 저는 미디어 제작 활동을 했던 7년간 항상 “나는 영상하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은 없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근래 들어서 영상이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매체라는 걸 인정했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영상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총회를 갔을 때 타 지역 미디어센터 스태프 분들을 처음으로 뵀어요.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불안불안하고 걱정이 많을 때였죠. 고민을 말씀드렸을 때 잘 들어주시면서 해주시는 말씀이 좋았습니다. 마음이 안정되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저희 센터에서 도움을 청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글_김수민 /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 운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