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센터와 사람들

미디어센터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글_주재형 / 수원미디어센터 공동체미디어팀

의욕에 가득 찼던 영화감독 지망생을 지나...

 

안녕하세요. 주재형입니다. 저는 현재 수원미디어센터에서 상영사업과 더불어 정책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저를 소개하자면, 영화과를 전공했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시간을 장기간 보냈었습니다. 물론 아직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좀 더 긴 호흡으로 꿈을 바라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연출, 촬영, 편집 등 혼자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학교 작업과 더불어 상업영화 현장에서도 다양한 파트의 일들을 해왔습니다. 이런 다방면에 대한 관심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를 일이지만, 언젠가는 밑거름이 될 거라 믿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경험들은 지금 당장 미디어센터에서 일하는 데 있어서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쯤 담당 교수님이 저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영화감독이 되는 자양분을 쌓으려면, 하루에 영화를 4편 정도는 봐야하며, 편식 없는 영화보기, 쓰기, 만들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400번의 구타>를 찍은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와 트뤼포도 비슷한 말을 했기에, 이건 당시 저에게 강력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저는 방학을 이용해 서울아트시네마에 몇 달을 살 듯이 지냈습니다. 낙원상가 4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화의 보고이자 해방구 같은 그곳의 분위기에 전 매료되었고, 집과 극장만 왕복하는 시간을 반복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안면이 있지만 어렵기만 했던 학교 선후배들도 볼 수 있었고, 얘기만 들어왔던 감독, 평론가들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개인적으로 말을 섞진 않았지만, 나도 그들과 동류의 인간이라는 동지의식이 제 마음속에 혼자 싹텄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만나는 영화였습니다. 전 그 영화들을 통해 흥미로운 인물들과 만나 소통할 수 있었고, 과거의 공간을 여행할 수 있었으며, 미래의 시간들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영화들은 강렬하게 저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선배의 추천으로 등하교 길에 <정은임의 영화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매일 들었습니다. 사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동시대에 함께 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들은 것은 누군가가 개인 사이트에 정리해놓은 녹음 파일들이었습니다. 이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은 1992년에서 1995년까지 정은임 아나운서가 담당 진행자가 되면서, 씨네필들의 보고와 같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감독들인 박찬욱, 변영주 등의 초년 시절 생각들과 정성일, 허문영과 같은 유명 평론가들의 열띤 영화 담론들을 무료로 내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서울아트시네마의 원류와 같았던 프랑스문화원인물들을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소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이들과 동일 선상에 아니 이들을 넘어선 어떤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참으로 치기 어렸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가능성으로 충만하던 나날이었습니다.

 

 

프랑스문화원과 같은 수원시네마테크 되기를 꿈꾸며...

 

프랑스문화원의 원류를 큰 틀에서 찾아보자면, 아마도 앙리 랑글루아가 설립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발명 이후 제작과 상영의 관점에서만 운영되던 영화시장에, 1900년대 초반 들어 필름 보존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필름은 결국 물질이고,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필름이 훼손된다는 것은 결국 영화가 사라진다는 말이죠. 그걸 우려한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앙리 랑글루아입니다. 스물 한 살인 1935년부터 시네클럽을 꾸린 그는 독일의 침공 속 수많은 영화가 소실되던 와중에도 다양한 영화들을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해 백방 노력합니다. 그리고 수집한 영화들을 재평가하고 재발견하며 가치 있는 영화들을 발굴해내고, 새로운 영화담론들을 일으킵니다. 이 랑글루아의 시네클럽은 그 중요성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부각되고, 결국 영화 역사 상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한 곳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됩니다. 더불어, 당시 무료상영을 즐기던 아이들은 누벨바그라 불리는 새로운 물결이 되어, 프랑스 영화계를 이끄는 주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 때, 시네마테크가 가졌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마도 보존(아카이브)’상영(공동체 활동)’이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역할을 지닌 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는 영화와 영상미디어를 꿈꾸던 과거 의욕 가득 찬 젊은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교육 현장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시네클럽처럼 나름의 길잡이들이 선정하는 양질의 영화들이 무료로 보여지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미래의 토토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과거 한국 시네마테크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 프랑스문화원은 사실 영화를 위한다는 목적성이 있던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국의 영화들을 보존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공간을 발견하고 가꿔나간 건 당대의 시네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 문화원이란 공간 속에서 서로를 발견했고, 각자의 노력으로 당시 여러나라에서 VHS 테이프들을 구입해왔습니다. 심지어는 외국 TV방송에서 나오는 영화들을 녹화해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런 열정들이 모여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수혜를 저 같은 사람 또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 비추어, 이런 공간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지역에서도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제가 일하는 수원에선 다양성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미디어센터의 상영관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래서 전 수원미디어센터의 상영관이 이 지역의 시네마테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원시네마테크로서 기능할 수 있으려면...

 

지역 시네마테크로서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보존(아카이브)의 기능입니다. 특히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들을 보존하는 작업은 정말 중요합니다. 지역의 대학, 시민들이 만든 영화나 영상물들, 더해 일상의 기록사진들은 당장의 가치가 적다하더라고 미래에는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란 결국 기록물들을 수집해서 새로운 역사를 구성하는 일입니다. 전 미디어센터들이 지역에서 이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과거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십년이 지난 후에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개개인들의 노력으로 이런 아카이브 기능을 살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역할은 말 그대로 상영(공동체 활동으로서의)’입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장 보편적인 오락행위가 된 지금, 이를 통해 새로운 담론과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하는 행위를 경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상영행위를 확장해, 지역의 작은 영화제를 여는 것은 일종의 해방구가 될 것입니다. 사실 기존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해 있습니다. 상업영화 1편의 평균 제작비가 50억이 넘어가는 요즘, 그 지점은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틈 사이사이에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다른 한편의 현실입니다. 자본 하에선 말할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그 속에 있습니다. 이런 가치 있는 영화들이 전국 집계 만 명의 관객들도 만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게 정당한지 따져보는 건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이게 현실이라는 건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지역의 시네마테크에 작게나마 영화제가 존재한다면, 한정된 시간동안 그간 만나지 못했거나 가려져왔던 담론들과 이야기들이 분출되어 일시적으로 충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정말 흥미로운 일입니다. 기성 논리에 닫혀있던 문을 잠시나마 열고, 개별 생각들을 소리칠 수 있는 축제 공간으로서의 역할, 이것도 전 미디어센터에 요구되는 역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중요한게 아닐까...

 

미디어센터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려 해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미디어란 단어가 주는 폭넓음에 짓눌려, 오히려 소극적인 미디어활동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많았습니다. ‘매스미디어가 사라지고 소셜미디어가 도래하는 세상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또 지역에 따른 개별 현실적인 제약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결국 중요한건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거의 시네필들이 시네마테크를 만들어 스스로 의미와 공간을 창출해냈듯, 우리도 고민하고 실천하여 미래의 미디어센터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위에 적었던 것처럼, 저 나름 미디어센터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나 자신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이루어 가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