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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흐름으로 살펴보는 미디어와 인권 : 성평등을 중심으로

글_김혜경 / 국경없는기자회 한국특파원


올해 초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시작된 한국의‘미투(Metoo)’운동이 정치, 문화예술, 학계 등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전통적인 언론은 물론이고, SNS와 같은 뉴미디어 채널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지지를 호소해왔다. 미투운동의 본질이 경찰이나 검찰, 집단 내 교정 등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성범죄를 대중에 폭로하고 연대로써 해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2차 피해 수준이 심각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언론은 가해자의 행위를 전시하듯 보도하고, 누가 더 자극적인지 경쟁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미디어 소비자들이 가세해 피해자의 신상을 노출시키거나 조롱한다. 집단적으로 관음증에 빠진 듯 하다.
물론 그다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 터지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들의 인권, 특히 프라이버시권이 처참히 짓밟히곤 했다. 세월호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대부분의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들이 그렇게 고통받았다.그러다 관심이 한풀 꺾이면 어김없이‘인권보도준칙’ ‘자살보도윤리강령’ ‘재난보도준칙’ ‘성폭력사건보도가이드라인’ 등을 거론하는 성찰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개 일회성에 그쳤고, 비슷한 사이클이 무수히 반복됐다. 고백하건대 (떠난 지 6년이 넘었지만) 국내 언론사에 있으면서 관련 준칙 및 권고사항을 숙지하고 재난이나 성폭력 사건 취재에 투입된 적은 없었다. 언론사들이 저마다 가진 윤리강령처럼, 이들 준칙은 현장에서 사문(死文)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라 보인다. ‘미투’ 운동의 시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와 연대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미디어의 관음증적 시선을 꾸준히 비판하고 있다. 대중들도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바야흐로 미디어와 인권의 상관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2018 ‘미투’운동의 또 다른 희망이다.
그렇다면 ‘인권’ 개념을 일찍이 정립한 국가들의 미디어들의 현주소는 어떨까. 반대로 특정 계층에만 인권이 있는 국가는? 미디어와 인권에서 ‘표현의 자유’를 빼놓을 수는 없다. 또 여성인권에서 노동권, 건강권까지, 인권의 종류는 다양하고 방대하다. 하지만 이 글은 ‘미투’가 계기가 된 만큼 미디어에서의 성평등 문제를 집중 다뤄보기로 한다.

 

 

 

#1. 매스컴 속 여성이미지 다양해졌지만 고정관념 여전


우리에게 TV 속 현모양처와 김여사의 이미지가 공고했듯이(현재진행형일 수도), 서구에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1980년대 미국 TV 방송 3분의 2는 남성이 타깃이었다. 표준여성에 비해 미디어 속 여성은 어리고 마른 모습이었고, 수동적이고 남성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예쁘고 고분고분하고 가정적이면 ‘좋은 여자’, 그렇지 않으면 ‘나쁜 여자’라는 이분법적인 이미지도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미디어는 만화와 영화 등을 통해 이러한 고정관념을 문화적으로 고착화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70-80년대 여성상을 그대로 표현한 월트디즈니의 ‘인어공주’다. 왕자를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인어공주는, 여성은 감정적으로 취약하며 남성을 뒤따르는 존재로 묘사됐다.

동시에 지난 세기 미디어는 자유를 쟁취하고자 투쟁해온 여성들과 함께 진보했다. 가령, 영화 ‘독신녀에리카(1978)’ ‘미친주부의 일기(1970)’ ‘앨리스는 더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1974)’에서 이혼한 여성, 사랑없이 결혼한 주부인 주인공들은 동시대 여성의 맨얼굴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들은 오랜 꿈이나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서면서 남성으로부터 독립해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다.


그간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매스컴 속 여성의 이미지도 더욱 다채로워졌다. 그런데도 여성은 미디어에서 여전히 배제의 대상이다. 2015년 미국사회학리뷰에 실린 ‘종이천장(A Paper Ceiling)’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미국 내 약 2,000개 영자신문 및 온라인 매체의 1983-2008년 뉴스에서 남성이름이 여성이름보다 5배 많이 언급됐다. 뉴질랜드에서는 2014년 총선 보도의 취재원 71%가 남성이었다는 연구도 나왔다. 2016년 호주여성리더십연구소가 호주 주요 신문의 취재원 구성 등을 분석한 ‘미디어에서의 여성’ 보고서는 정치 80%, 경제 86%, 사회 61%, 문화 63% 등 거의 모든 영역을 남성 취재원이 과점했음을 밝혀냈다. 반면 육아와 성평등같은 분야에서만 여성 취재원이 30%가량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오피니언의 경우, 여성 필진은 17%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해당 직군 안에서 여성 비율을 고려하더라도 보도가 남성에게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취재원에 일반 시민이 포함되는데도, 인구 절반인 여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여성은 감정적이고, 수다를 떨거나 근거없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낳은 결과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2. 여성 인권 보도하다 죽기도

 

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여성 인권: 금기시된 주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따르면 국경없는기자회 취재 결과, 2012-17년 20여개 국가에서 최소 90명 이상의 언론인이 여성 인권이나 성문제를 언급 혹은 보도했다는 이유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 이 중 11명은 살해, 12명은 투옥됐고, 25명은 신체적 피해를 입었으며, 최소 40명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위협을 받았거나 받고 있음이 확인됐다.


일례로 인도의 페미니즘 주간지 ‘가우리 란케시 페트리케(Gauri Lankesh Patrike)’ 편집자 가우리 란케시는 카스트 제도 내 여성의 위치를 비판한 기사로 지난해 총살됐다. 현재 이란에서는 다수의 페미니스트 언론인이 사법적 조치 및 구금 대상이다. 남성 언론인이 표적이 된 경우도 있는데, 소말리아에는 성폭행 피해자를 인터뷰한 뒤 거짓 보도를 했다는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이들을 위협하는 주체는 다양하다. 탈레반이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극단적 종교 단체를 비롯, 낙태 반대 단체(미국), 범죄조직(멕시코), 독재정권(중국, 터키, 이집트), 인터넷 유저(프랑스, 캐나다) 등이다. 대상이 여성일 경우, 수법이 더욱 악질적이고 성적으로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고 단체는 밝혔다.

 

 

#3. 여성에겐 더욱 작은 미디어 취업의 문

 

미디어 컨텐츠가 균형을 찾으려면 결국 생산자인 노동자 구성이 중요하다. 주제를 정하거나 내용을 채워가는데 개인의 경험과 시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이다. 지난해 한국 여성 언론인 비율은 27%였다. 이마저도 대상이 임원으로 한정되면 뚝 떨어졌다.

 

외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미국 미디어 업계 여성비율은 37%다. 남미의 경우, 방송진행자 및 기자 가운데 여성이 29%를 차지한다. 여성인권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동은 신문, 방송 뉴스 분야 종사자 중 18%만이 여성(2015년 기준)이었다. 영국은 여성 언론인이 무려 45%에 달한 대신, 언론인의 94%가 백인(인구 기준 백인 87%)이라는 한계를 드러냈다. 불균형한 보도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부 언론사들은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고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독일 일간지 ‘타게차이퉁’은 편집국의 모든 직책에 대해 남녀 50대 50 강제 할당제를 시행 중이다. 이네 폴 전 편집국장(2009-15년 역임)은 “할당을 채우지 못하면 다음 채용에서는 무조건 여자만 뽑는 식”이라며 “일단 여성을 뽑기로 강제하면 훌륭한 여성을 뽑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남성 언론인의 비율이 높은 인도에서는 경제지 ‘민트’가 2007년 모든 직원의 50%를 여성으로 채우는 정책을 추진했다. 호주의 ABC 뉴스도 동등한 남녀 비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나 세키야마 발전과여성권협회(AWID)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성평등을 약속하는 것은 뉴스룸 안에서의 권력관계를 바꾸는 일”이라며 뉴스룸의 성평등은 경영진의 의지 및 구성원과의 소통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4. 세계적인 공영방송도 임금 성차별

 

그럼에도 갈길은 멀다. 여성의 유리천장과 더불어 임금 성차별 문제는 아직 해결이 요원해보인다.

 

최근에는 영국의 공영방송 BBC도 임금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월 캐리 그레이시 BBC 중국지사 편집장이 성별 임금 불평등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부터다. 2013년부터 중국 지사장으로 활동해온 그는 남성 해외 지사장이 최소 1.5배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공영방송 BBC가 남성과 여성은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평등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익명의 여성 언론인 14명이 추가로 불공평한 대우를 털어놨다.

 

이후 회계컨설팅업체 PwC는 BBC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BBC는 임금을 결정하면서 성편향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BBC 전체 직원 기준, 남녀 임금격차 9.3%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BBC는 지난해 공개한 2016년 자사 출연 방송인 보수 자료에서도 15만 파운드(약 2억 2,000만원) 이상을 받는 96명 중 여성이 3분의 1에 그쳐 비난을 샀다. 이번 3월에는 BBC윔블던 테니스대회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인 유명 여성 해설위원이 남성 해설위원 임금의 10%만 받고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폭로되기도 했다.

 

현재 BBC는 주요 남성 방송인 6명의 임금 삭감을 시작으로 “개인간 임금 불공평성을 해소해 성별 임금 격차를 좁히고, 2020년까지 생방송 인력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한다. 시민의 생각을 전달하는 통로로서, 미디어 종사자는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고 인식을 높일 책무가 있다. 그러나 적절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한 의식있는 시민들의 비판과 지지가 없다면, 권력과 자본에 쉽게 흔들리는 미디어가 인권 신장에 기여하기란 쉽지 않다. 비단 성평등 문제만이 아니다. 왜곡된 창은 더 큰 사회의 왜곡을 부를 수 있다.


이에 2013년 유엔인권위원회는 ‘세계 인권교육 프로그램’ 3단계로 미디어 종사자와 언론인을 위한 인권교육을 채택했다. 인권교육 프로그램 1단계(2005-2009)가 초중등 교육, 2단계(2010-2014)가 고등교육이던 것을 감안하면 인권 분야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얼마나 중대한 지 가늠해볼 수 있다. 실제로 해당 결의안은 “미디어 종사자와 언론인은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데 근본적 역할을 수행한다”라고 적고 있다.

유엔 회원국인 한국은 정부가 관련 부처 및 시민사회와 함께 인권교육을 이행하고 국제사회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전국 미디어센터 직원들도 결의안의 ‘미디어 종사자’에 모두 해당한다. 그러니 2019년이 가기 전까지 지역에서, 센터에서 어떤 인권교육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시기를 바란다. 도움이 될 만한 관련 사이트를 소개하며 갈무리한다.

 

 

(국내)

한국여성민우회 www.womenlink.or.kr

민주언론시민연합 www.ccdm.or.kr

진보넷 www.jinbo.net

오픈넷 www.opennet.or.kr

인권보도준칙 www.journalist.or.kr

한국언론재단 미디어리터러시 http://dadoc.or.kr/

 

(해외)

국경없는기자회 rsf.org

휴먼라이트워치 www.hrw.org

유엔인권위원회 인권교육 프로그램 3단계 www.ohchr.org/EN/Issues/Education/Training/WPHRE/ThirdPhase/Pages/ThirdPhaseIndex.aspx

유네스코 보고서 ‘언론에서의 젠더평등’ http://unesdoc.unesco.org/images/0018/001807/180707e.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