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미디어센터의 성평등문화를 위한 좌담회

글_미디어스코프


2009년 12월 31일, ‘좀 더 성(性)인지적인 미디어센터를 만들기 위한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출간되었습니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등 3개의 미디어센터가 함께 발간한 이 보고서의 연구팀(김지현, 김효정, 이진행, 재연, 수수)은 서문에서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누구나 누려야할 보편적 권리로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미디어 리터러시와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디어센터는 이러한 젠더 간 불평등을 바로잡을 의무와 함께, 또한 그러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커다란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0년 여가 흘러, 다수의 용기있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폭력의 실상에 대해 고백하고 폭로하는 최근, 지역미디어센터의 성평등문화에 대해 돌아보는 성찰적 계기를 만드는 것도 ‘함께 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좌담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 진행 : 허경(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이사)


• 참석(가나다 순)

- 김수경(서울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사업개발팀장)

- 김수목(미디어교육 강사/독립영화감독)

- 김수연(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정책기획실)

- 문연옥(수원미디어센터 커뮤니티지원팀)


• 배석

- 곽서연(영화진흥위원회 서울영상미디어센터)

- 김예은(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영상문화지원실)



#좌담회 소개


■ 허경

미투(#MeToo)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한 개의 사안에 대해 차분히 고민할 틈도 없이 새로운 폭로가 나온다. 주변사람들과 얘기하며 배우기도 하고 고민도 생긴다. 차분히 우리진영에 대해 얘기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어서 좌담회를 급히 제안 드렸다. 몇 곳의 미디어센터에서 스태프로 일하신 문연옥 선생님, 독립영화감독이자 미디어교육 강사로 활동하시는 김수목 선생님,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에서 스태프 네트워크 사업을 하실 김수연 선생님, 그리고 미디액트에서 오래 일하셨고 지금은 서울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일하시는 김수경 선생님을 모셨다. 각자의 미디어센터 관련 역할이 조금씩 다르니, 이런저런 경험과 고민을 함께 얘기해보자.





#10년 전_보고서 #10년 후_지금_미디어센터


■ 허경

보고서를 다들 보셨는지?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


■ 문연옥

보고서에 있는 체크리스트는 지금도 여전히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 전의 내용이 현재도 적용되는 거니까, 바뀐 게 없는 것 아닐까? 놀랐다.


■ 허경

사실 전미협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미디어센터의 성평등에 대해 함께 고민한 적이 없는 게 사실이다. 보고서가 나온 게 2009년이고,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이하, 전미협)는 2010년 5월에 출범했다. 당시에는 미디어센터도 적었고, 센터 간에 교류가 지금처럼 활발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전미협도 올해 총회에서 정관에 성평등 관련 내용을 추가하고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만들자고 처음 얘기했다. 당시에 비해 여성 센터장과 사무국장이 몇 분 생겼다는 것 정도.


■ 문연옥

실무자급은 여성이 많지만, 관리자급은 대부분 남성.


■ 김수연    

여성스태프들이 많은 것에 비해 근속연수가 길지 않은 것이 원인일 수 있다.


■ 문연옥    

대부분의 미디어센터가 위탁시설이고 위탁이 변경되었을 때 고용이 당연히 보장되지 않으니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게 중요한데, 5년 일 했을 때 내가 뭐가 되어있을까라고 생각하면, 바뀌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미디어센터나 업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상황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힘든 거 같다.


■ 김수경    

미디어센터의 규모가 크지 않은 것도 원인인 것 같다. 내가 일하는 센터는 현재 60명 정도 되는데,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육아휴직을 가거나, 단축근로를 할 수 있다. 물론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거다. 조직의 규모가 작으면 일의 양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대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거다. 미디어센터는 일의 특성도 분야별로 전문화되어있어서 더욱 어려울 수 있겠다.


■ 문연옥    

업무 관련 매뉴얼 없이 스태프들의 개인기로 업무로 많이 처리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개인의 역량에 기대면 그 사람이 빠졌을 때 대체가 불가하다.


■ 김수연    

규모가 작으니, 당연히 매뉴얼화 되기 어렵고, 관계 위주로 흘러가게 된다. 규모가 되지 않는 한, 가이드 정도는 만들 수 있어도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을 거다.


■ 문연옥    

미디어센터에 대한 업무 매뉴얼을 전미협에 만들어서 스태프들과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 그 내용 중에 성평등과 관련된 것도 포함시키고.


■ 허경       

미디어센터의 조직이나 업무의 특성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지만, 이를 고려해서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올해 전미협 목표 중 하나가 일종의 ‘표준’을 만드는 거다. 가치와 형식을 포함하는 좋은 의미의 ‘표준’.


■ 김수경    

서울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는 광역지원센터라서 서울시, 자치구센터, 마을현장과의 정책순환체계를 고려하면서 사업을 하고 있다. 자치구센터에는 마을 현장과 직접 만나는 정책지원 활동가들이 있다. 매뉴얼을 만든다면 현장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거고, 그걸 위해서는 현장의 의견이나 특성들이 반영되어야 할 거다.



 

#미디어교육_성평등


■ 허경       

미디어교육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자. 어떤 문제가 있을까?


■ 김수목    

문제라기보다, 보고서를 보면서 성평등에 대한 인지가 없었구나... 생각했고 놀라웠다. 센터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고 함께 기획을 한 적도 많은데 보고서에 있는 체크리스트나 질문들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확인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제도교육의 혜택을 못 본 여성들, 여성노동자들 대상 교육을 할 때 참여자의 다른 특성에 대해서는 고민을 했지만, 여성이라는 조건을 고려한 기획과 운영이 부족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이 보고서를 함께 만든 익산센터와 미디액트에서는 여성미디어교육을 할 때는 이런 고민이 좀 더 있었던 거 같다.

또 사실, 강사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강사의 처우나 활동조건이 워낙 불안정하고 취약하다 보니, 주로 여성만 지속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여성강사를 수강생들이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남성 어르신 교육을 할 때 남성강사나 스태프의 권위는 인정하는 분위기다. 특히 남성감독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여성강사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편하게 생각한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닌거다.


■ 허경      

노인미디어교육은 어떤가? 일반화하는 건 조심해야겠지만 어르신들의 문화가 남성중심일 수 있을 텐데.


■ 문연옥   

성북의 경우, 일부 어르신 동아리는 여성 중심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통 여성이 리더십을 가지려면 ‘기센여성’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뭔가 계속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 거다. 실제로 어르신들이 저한테는 ‘문양’이라고 부르고 남성스태프에게는 직책을 부르는 거다. 그래서 똑같이 직책을 불러달라고 말씀드렸다.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여성에게는 성적인 호칭을 남성에게는 사회적 호칭을 부르는 건 문제라고 말씀드렸다. 결국에 저한테도 ‘주임’이라고 부르셨고 태도도 달라졌지만, 왜 나는 계속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니 슬펐다. 나는 계속 ‘기센여성’이 되어야 하는 거다.


■ 김수연    

호칭 문제는 다반사인 거 같다. 강의하러 들어갔는데 여성감독님한테는 ○○씨, 남성 보조강사에게는 선생님이라고 한다더라. 수강생 한 분 한 분과 얘기하고 설득하기는 어려우니 교육시작 전에 공지를 한다거나 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강사는 이런 문제에 대해 에너지를 추가로 써야 하고 교육자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력을 잃게 되는 거다. 센터나 조직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 김수목    

저도 첫 수업 들어가면 호칭정리부터 한다. 어르신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싫어하시는 경우도 많아서, ‘~님’ 이렇게 부르는 걸로 약속을 한다거나.


■ 김수경    

젊은 활동가였을 때 굵직하고 큰 교육의 강사로 명망이 있는 남성 감독들을 섭외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디어센터 스태프들은 여성이 많았고 주류 영화 감독들은 남성이 많았는데, 교육 끝나고 함께 뒷풀이 가면 음담패설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 그런 대화 속에 성추행이 있었겠구나 생각한다. 그런 가이드가 필요할 것 같다.


■ 김수목    

미디어교육도 사회운동과 흐름을 같이 하는 거 같은데, 고령화 문제가 부각되면서 노인미디어교육이 많이 확장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여성이나 성평등의 문제가 늘 옆에 있었지만 깊이 고민되지 못했다. 최근 미투운동을 계기로 미디어센터에서도 노인미디어교육과 성평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 허경      

미디어센터의 특성상, 노인이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앞으로도 많아질 거다. 미디어센터 차원에서 미디어교육 참여자들에게 성평등과 관련한 운영규정 같은 것을 설명해주고 함께 약속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스태프도 강사도 여성이 많으니, 이건 당장에 진행해야 하고, 당장에 할 수 있는 거겠다.


■ 김수연    

두 축이 필요할 거 같다. 일하는 스태프와 교강사를 보호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 이것은 공표를 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토론 프로그램 같은 것도 필요할 거다.


■ 김수경    

그런 가이드를 만들고 적용할 때, 그리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그 지역이나 대상의 특성도 고려해야 할 거다. 인식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서 공감대를 넓혀가기 위한 현실적인 내용과 방법이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작더라도 함께


■ 허경       

김수경팀장님이 접근방식을 말씀해주셨다. 좀 더 얘기를 해보자.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 어떤 태도로 시작을 준비해야 할까?


■ 김수경    

성평등의 문제가 물리적인 성별만을 구별해서 얘기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과 태도가 점검되는 게 적절해 보인다. 또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성인지와 동네 아저씨에게 바라는 성인지가 다를 수 있을 거라서(웃음) 각자의 현장에서 성평등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 김수연    

성폭력의 여러 사건이 드러나고 미투운동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피해자도 위계가 나눠지기도 하는 거 같다. 이번을 계기로 가해자를 발본색원하자는 접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디까지를 피해로 인식하는지 감수성을 점검해보고 공감대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미디어센터는 특히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니까 그런 게 더 필요할 거다.


■ 문연옥    

내 경우에는 외모평가는 워낙 많이 받아서 익숙하게 대충 넘어가기도 하는데, 다른 스태프들은 나하고 달리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거다. 그래서 내가 그런 말 하는 분한테 그러지 말라고 하기도 애매할 때가 있다.


■ 김수경    

‘네가 불편하지 않다고, 후배들도 안 불편한 게 아니다’라고 한 선배가 얘기해주더라.


■ 김수연    

나이 위계도 있어서 지위가 낮아도 권력이 있는 경우가 있다. 나한테 동의를 구하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편안하게 반말을 한다든지. 이제 막 진입한 나이 어린 스태프들은 그런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당사자에게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되, 목격자로서의 태도가 필요하다.


■ 김수경    

남성들이 과도하게 미안해하거나, 많이 불편해하고 힘들어 하는 것을 자주본다. 남성 일반을 폄훼하거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공감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고 필요할 것 같다.


■ 허경       

우리가 함께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각 센터마다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될 거고. 이것을 함께 감당하고 서로 공유하면서 응원하는 것이 필요할 거 같다. 미투운동이 전체 사회적 수준에서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미디어센터에서 작은 시도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서로 공감대를 갖고, 미디어센터라는 구체적인 공동체에서 질문과 고민을 시작해보는 것이 중요할 거다. 함께 좀 더 불편해지자는 결심을 갖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필요하다.


■ 김수연    

미디어센터는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으로써,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가치이다. 동시에 성평등에 대한 높은 수준의 감수성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첫 발을 내딛는 게 필요한 것 같다.


■ 허경       

그래서 이걸 함께 하게 될 경우, 함께 하는 센터, 함께 하는 스태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방법을 찾고 서로 응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편해지는 일이고 그래서 분명히 각자는 힘들어 질거니까. 그리고 각 센터의 선배, 책임자 등의 공감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야할 얘기,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전미협 차원에서, 그리고 개별센터 차원에서 작더라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 모이신 분들께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또 모여서 공유하자. 오늘 참석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좀 더 성(性)인지적인 미디어센터를 만들기 위한 연구‘보고서 다운로드: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https://www.mediac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