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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에 생각해 보는 가족 문화프로그램 :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글_안태호 /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협동조합 이사


5, 여느 해와 다름없이 가정의 달이 됐다. 많은 기관/단체들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의 달력사업을 위해 가족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한다. 가족이 갖는 의미가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되었다지만, 여전히 정책대상의 다수가 처한 조건을 두고 사업을 추진한다. 잠깐,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정책대상의 다수가 가족인 게 맞나? 가족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총조사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27.2%에 이른다. 무려 5203000 가구다. 1인 가구는 2인 가구(4994000 가구26.1%), 3인 가구(4101000 가구21.5%),4인 가구(3589000 가구18.8%)를 제치고 가장 흔한 가구가 됐다. 5인 이상으로 구성된 가구는 1224000 가구로 6.4%에 그쳤다. 확실히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족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 문화는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있다. 각종 프로그램 역시 한국사회의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아동 청소년 위주로 짜여있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지체된 인식이라고 할 만하다. 아마도 이 역시 가족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따라 점차 변화해 갈 것이다.


많은 사업이 가족 프로그램을 표방하지만, 실제로 가족 전체가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가족의 범위가 천차만별이기도 하고, 프로그램의 구성과 이런저런 특성상 일정 숫자 이상의 인원을 수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한 까닭이다. 대개의 프로그램은 아이와 부모 중 한 명, 혹은 아이와 조부모 중 한 명 정도가 참여하게 된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단순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가족의 특성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체험프로그램의 참여대상이 가족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과 함께 공연(전시)보기, 가족과 함께 ㅇㅇ만들기, 가족과 함께 ㅇㅇ가보기 등의 프로그램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프로그램이 심화되기 어려운 조건들 때문이다. 이는 흥행을 위한 단기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는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다른 대상과 소재를 찾아 흥행이 될 만한 아이템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부천과 제주의 문화재단에서 일하는 동안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흥미롭게 관찰했던 현상이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부모(주로 엄마)들이 아이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카페 등에서 나름의 친목을 도모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기가 가능한 주변 공간에서 그저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2014년과 15년 부천의 아트포럼리에서 진행한 올레이지(Allage!) 프로그램은 그런 점에서 신선한 측면이 있었다. 엄마들과 아이들의 교육프로그램을 동시간대에 배치해 진행한 것인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2014년에는 그림수업, 티테이블을 만드는 목공수업, 바리스타 수업을 4차례씩 진행했다. 15년에는 현대미술이론, 패브릭아트, 금속아트 등을 함께 배웠다. 그 동안 아이들은 미술과 요리, 산책놀이 등을 마을의 어르신과 함께 경험한다. 교육프로그램인 동시에 공동체 활동의 일부를 포함하는 셈이다. 프로그램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방식만으로도 가족을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가족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의 장점이 눈에 띈다. 일단 가족단위로 동일한 경험을 통해 정서적 교감을 증진시킬 수 있다. 이건 어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나 직장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관계가 남다른 것은 경험의 스펙트럼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의 교육을 위해 부모가 시간을 별도로 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 교육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가족프로그램의 장점은 두드러진다. 아이들의 경우 케어가 어려운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데, 부모가 함께 참여하게 되면 아이를 돌보는데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고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다. 

  


<야생초의 약속: 제주>는 예술공간 이아에서 2017년도 8월에 진행된 생태미술 프로그램이다. 미국 작가 저스틴 타일러 테이트는 가족단위 참가자들과 함께 예술공간 이아 주변 지역에서 다양한 식물의 표본을 채집해 그림을 그렸다. 참여자들은 채취한 식물의 즙을 활용하여 대형 도화지에 식물의 모양을 따라 그림을 남겼다. 식물 채취부터 참여자 모두가 드로잉을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작업이 되어 결과물은 제주비엔날레 전시에 출품되었다. 참여자들은 다양한 식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었으며, 가족들과 프로그램 참여와 소풍을 겸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외국인 작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란 점과 자신들의 활동이 예술작품의 일부가 되어 국제적인 전시에 출품된다는 사실은 참여자들에게 색다른 심리적 고양감을 안겨주었다



영국에서 열리는 Cartoon and Art Family Day는 매년 400여명의 가족이 참여하는 행사다. 이 행사는 The Big Draw 축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진행된다. The Big Draw는 매년 10월 한 달 동안 열리는 드로잉을 위한 캠페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그림을 접하고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날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참가자들의 경험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전문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테크닉과 각종 팁들을 익히며 자신만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돋움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가족들의 참여를 통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함께 작품을 만드는 성취감을 누릴 수도 있다. 이 행사는 특히 무언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림을 보는 새로운 생각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데 포커스를 맞춘다. 다양한 세션들이 영국의 톱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의 설명과 도움을 통해 두 시간마다 진행된다. 이 날 만큼은 누구나 일러스트레이터, 건축가, 화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주의 깊게 볼 만한 세션은 음악과 함께 하는 드로잉이다. 연주자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참여자들은 음악을 통해 연상되는 이미지들을 그림으로 남긴다. ‘Be inspired to draw by music’이란 이름의 꼭지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주는 영감과 영향력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2011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엄마와 딸은 관계의 밀도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해외 전문가를 초청하여 커뮤니티 댄스 워크숍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엄마와 딸2011418일부터 29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에서 핀란드의 안무가 한나 브로테루스(Hanna Brotherus)와 함께 이루어진 커뮤니티댄스 프로그램이다. 한나 브로테루스(Hanna Brotherus)는 핀란드 헬싱키 출생 안무가로, ‘엄마와 딸워크숍을 핀란드에서 꾸준히 진행하며 일반인들을 본인 안무작에 출연시켜 인간의 내면욕구 또는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참가자들은 열흘 동안 몸과 관계에 기반을 둔 동작과 소통을 나눴다. ‘몸으로 나누는 이야기라는 표현은 이 과정을 묘사하는 데 가장 적절해 보인다. 20세 이상의 딸과 엄마, 7-12세 사이의 딸과 엄마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서는 엄마와 딸이 서로 역할을 바꾸어 표현하기, 자신의 인생을 몸으로 표현하기, 눈을 맞추며 동작을 함께 하기, 엄마가 어렸을 때 불러주었던 노래를 함께 부르기 등을 통해 모녀가 몸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몸은 말보다 진솔하다. 말은 끊임없이 자의식이 끼어들지만, 몸은 상대적으로 즉흥적인 표현을 통해 정서를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엄마와 딸은 친밀하면서도 낯선 관계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복잡한 사이, 도저히 몇 마디 말로는 설명해낼 수 없는 방법이 없는 사이기도 하다. 몸으로 소통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다. 이 어색함을 넘어 커뮤니티 댄스라는 방법론과 엄마와 딸이라는 특수한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프로그램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한나 브로테루스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커뮤니티 댄스의 효과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커뮤니티 댄스는 특정 방법이나 의미로 규정하기보다 몸과 움직임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현재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커뮤니티 댄스지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회복, 아픔과 상처 치료 등을 통해 건강한 사회인을 양성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춤을 통해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 댄스랍니다.” 이 워크숍에는 전문가 세션이 따로 준비되어 워크숍에 참여한 무용전문가들은 이후 몇몇 프로그램을 후속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가족 대상 문화 프로그램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17개 시·도 지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아동·청소년 및 아동·청소년을 포함하는 가족들에게 문화예술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건전한 주말여가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2012년부터 시작됐으며, 미술,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을 박물관, 도서관, 문화예술회관 등의 문화기반시설에서 진행한다. 올해는 900여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그 중 가족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160개에 이른다. 이 중 음악을 기반으로 한 가족 오케스트라/합창 프로그램과 꼬마 작곡가 프로그램은 가족들이 음악을 통해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경우 악기를 배우면서 하모니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사회성과 협동, 소통능력을 키울 수 있는 유용한 과정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합창 역시 다른 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퍼포먼스를 조절해나간다는 측면에서 오케스트라와 비슷한 효과를 보여준다. 참여자들은 부모, 자식 간의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가족 간 대화가 늘어나고 관계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꼬마 작곡가의 경우에도 작곡을 위해 느낌을 나누는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의사소통이 생활상의 필요가 아닌 각자의 느낌과 감성에 맞닿은 소통을 하게 된다. 이는 건강한 관계의 좋은 밑거름이 된다는 게 참여자들의 전언이다.



초반에 가족의 의미가 급변하고 있는데 사회적 인식은 지체되고 있다고 썼다. 가족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관건은 관계의 밀도다. 결국, 가족은 조금 특수하기는 해도 관계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것을 기반으로 상대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지 않으면 단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 밀도는 높아지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당위에 떠밀리지 않는, 건강한 관계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